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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의 삶은 고달픔.
속도에 모든걸 바친 극도의 신체구조 때문에 조그만 부상에도 아주 취약함.
크기가 빈말로도 크다고는 못하는데, 그렇다고 작다고 하기에도 애매함.
중간포식자로써 비교적 큰 먹이를 사냥할수밖에 없어서 최상위 포식자에게 먹이를 빼앗길 위험이 꽤 높음. 실제로 그렇다는게 흔히 퍼져있는 통념이었고.
하지만 치타도 마냥 호구쉐기는 아닌지라, 당연히 이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대응전략을 개발했음.
가장 기본적으로는 애초에 빼앗길 일을 만들지 않는거임. 치타는 다른 포식자들을 시간, 공간적으로 회피함.
우선 대부분의 아프리카 대형포식자가 덜 활발한 대낮에 사냥하고(이건 고속주행하는 특성상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함)
더 큰 포식자가 근처에 있는 경우 사냥 자체를 애초에 시도하지 않음.
하지만 이런 회피 전략이 완벽한건 아님. 최상위 포식자의 밀도가 높고 서식지 이용 범위가 넓은 생태계에서는 이들을 완전히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분명히 존재함.
그런 환경에서 치타가 먹이를 잡은 경우, 크게 세가지 전략을 사용함.
1. 긴 풀밭, 덤불, 그늘로 먹이를 옮겨 숨기기
2. 최대한 빨리 먹어치우고 빨리 내빼기
3. 주변을 경계하며 다가오는 포식자를 미리 감지하기.
이중 식사시간을 줄이는 전략과 주변을 경계하는 전략은 양 극단의 전략으로 상호 반비례 관계가 있음.
정신없이 게걸스럽게 식사하면 경계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고, 주변을 경계하면 당연히 식사에 필요한 시간이 질질 늘어남.
따라서 치타는 사냥 시 직면하는 위험과 에너지 요구량, 포식자 밀도, 먹이 크기, 상황 등의 변수에 따라
두 전략의 사용 비중을 조절하고 이는 치타의 사회집단에 따라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보임.
혼자있는 치타들은 식사에 올인함. 이들은 가장 빨리 먹고 가장 빨리 자리를 떠남.
무리지은 수컷들은 상대적으로 주변을 더 경계하는데, 무리의 이점이 있어서 이건 강도 방지책이라기보단 잠재적 짝짓기 대상인 암컷이 다가오는걸 발견하기 위해서라는 소리도 있더라.
경계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는건 새끼가 딸린 암컷임. 새끼들은 대형 포식자의 직접적인 공격 대상인데(무려 73%가 다른 포식자에게 목숨을 잃기도)
물리적으로 도망 자체가 불가능하고, 절대적인 입 크기도 작은데다 철이 덜들어서 쉽게 산만해짐.
그래서 이들은 다가오는 포식자를 발견하고 새끼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 가능성을 높일수 있도록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계, 포식자 대응에 필요한 체력의 회복에 식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함.
물론 이들도 최대한 빠르게 먹으려 하지만, 새끼들이 충분히 먹을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에 어미가 식사를 사실상 희생하는거임.
가장 본질적인 전략은 빼앗겨도 괜찮도록 생리 자체를 조절한 것임.
치타의 에너지 소비는 굉장히 효율적.
사냥시 순간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량은 폭발적이지만, 그 절대적 시간 자체가 아무리 격렬해도 평균 38초 수준으로 짧고 하루 한번 이상 질주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일일 에너지 소비량 중 사냥이 차지하는 비율이 생각보다 적음.
그래서 치타가 사냥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 거의 같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사실이 발견됨.
이런 상대적으로 낮은 먹이 획득 비용과 유연한 에너지 예산 덕분에 이론적으로 50%의 먹이를 빼앗기더라도 1시간만 더 사냥하면 그 손실을 쉽게 보충할수 있음.
그리고 여기서 상술한 전략들을 추가로 사용함으로써 실제로 먹이를 빼앗기는 비율은 10번의 사냥중 1번 꼴이라고 함.
대형 포식자들의 강도질에 더 심각한 영향을 받는 중간포식자는 리카온임.
이들은 개과 특성상 몇 시간씩 이어지는 집요한 추격전을 통해 먹이를 지치게 만들어 잡는데, 이런 전술은 실제 사냥 과정에서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
그래서 얘들은 먹이를 죽이지 않음. 일단 제압했다 싶으면 곧장 산채로 먹어치우기 시작해 15분 이내로 최대한 빠르게 식사를 마무리함.
결국 치타는 통념으로 퍼져있는 수준의 호구가 아님. 대형포식자, 경쟁자로 우글대는 환경에 효율적으로 잘 적응한 중간포식자 종이며
현재의 멸종위기는 서식지 감소와 밀렵 등 순수하게 인간의 영향력으로 초래된 결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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