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심희수 기자】 SK지오센트릭이 ‘미래 먹거리’로 추진했던 친환경 사업 투자에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2021년 ‘Carbon to Green’ 전환 선언과 함께 2025년까지 5조원 투자를 내걸었지만, 석유화학 불황 장기화와 상업성 검증 지연이 겹치면서 사업의 우선순위를 조정했다.
27일 SK지오센트릭에 따르면 폐플라스틱 처리, 친환경 소재 생산, 생분해성 수지 생산 설비 증산 투자 계획을 중단했다. 이는 2021년 7월 발표한 중장기 계획에서 각각 90만톤(t), 140만톤, 6만톤 확대 구상을 제시한 지 4년 만이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 19일 정정 공시한 중장기 계획 이행현황에 따르면 SK지오센트릭 신규 사업 추진을 위한 설비 증설 계획에 대해 “사업환경 변화에 따라 투자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울산 ARC가 ‘상업화’ 구간으로 넘어가기 전, 수익성 검증과 업황 변동성이 커지며 ‘속도’보다 ‘회수 가시성’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친환경 사업 전환의 축이었던 울산 ‘ARC(Advanced Recycling Cluster)’에 가장 큰 타격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SK지오센트릭은 2023년 11월 SK 울산CLX(정유·석유화학 단지) 내 약 21만5000㎡ 부지에 총 1조8000억원을 투자해 ‘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 조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ARC는 ▲열분해(파이롤리시스) 및 후처리 ▲해중합(디폴리머라이제이션) ▲초임계 용매 추출 등 기술 조합을 통해 연간 약 32만t 규모의 폐플라스틱을 새 원료로 전환하는 시설이다.
SK이노베이션은 “대외 경영환경 변화로 인해 당사의 중장기 계획 중 일부 투자계획과 영업실적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워졌고, 실제 이행현황도 중장기 계획 대비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당사의 경영진은 중장기 계획에 대한 이행현황을 공유하고, 이를 반영해 공시 내용을 정정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에서 진행 중이던 친환경 프로젝트도 속도 조절에 들어갈 전망이다. SK지오센트릭은 2023년 2월 프랑스 수에즈(SUEZ), 루프 인더스트리(Loop Industries)와 함께 프랑스 그랑테스트(Grand Est) 지역 생-아볼드(Saint-Avold) 부지를 유럽 첫 ‘Infinite Loop’ 공장 후보지로 선정했다. 이를 통해 연 7만t 규모의 재생 PET 수지를 생산하는 공장 건설하고, 오는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총 투자액은 4억5000만유로(당시 환율 기준 6200억원)이다.
SK지오센트릭은 석유화학 시황 변동성과 사업환경 변화로 인해 신규 사업을 통한 실적이 당초 목표를 밑돌았다고 적시했다. 2021년 당시 제시된 SK종합화학(현 SK지오센트릭)의 신규 사업을 통한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목표는 2025년 1조1000억원이었지만, 정정 공시에 기재된 2025년 1~3분기 누적 EBITDA는 29억원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방향성은 맞았지만 상업화 속도는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 검증 단계와 수익 창출 단계 사이의 간극이 커지면서, 선제 투자보다 투자 회수 가시성을 우선하는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SK에코플랜트 역시 친환경 사업 자회사 리뉴어와 리뉴원을 매각하고 반도체 중심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선 것도 같은 흐름이라는 지적이다.
SK지오센트릭은 석유화학이라는 본원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두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방침은 최근 임원 인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SK지오센트릭은 지난 4일 임원 인사를 통해 SK에너지 김종화 대표이사 사장이 SK지오센트릭 대표이사를 겸직한다고 밝혔다. 정유·화학 통합 운영으로 원가·공정 효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김 대표이사는 2018년 SK에너지 Engineering 본부장, 2020년 SK이노베이션 SHE부문장, 2022년 SK지오센트릭 CSO 겸 생산본부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SK에너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정유와 화학 사업을 두루 경험한 인물이다.
SK지오센트릭 관계자는 “친환경 시장 개화 속도가 늦어졌다고 친환경 사업을 전면 철회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최근에는 울산 석유화학 단지 구조재편과 더불어 석유화학이라는 본원 경쟁력 강화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