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한국의 속도에 놀란다면, 나는 타이완의 개방적인 문화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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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한국의 속도에 놀란다면, 나는 타이완의 개방적인 문화에 놀란다

프레시안 2025-12-27 11:32:2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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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이라는 나라는 놀랍도록 개방적이다. 오랜 독재를 경험한 분단국가이며 섬이라는 지형적인 한계도 있다. 유교 문화권에 속한 나라이기도 하고, 대부분 중국 본토 출신인 대만인들이라 단일한 문화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큰 착각이었다. 대만의 문화는 무척 다양하고 그만큼 개방적이다.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들이 '한국이 빠르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다'라고 놀란다. 대만에서는 '개방적인 줄 몰랐고, 정말 믿을 수 없이 개방적이다'라고 놀랄 만하다. 소수자에 대한 포용성, 성(性) 개방성 등 타이완의 탈아시아급 개방성에 대해 살펴보자.

조금 순한 맛으로 개인적인 경험을 먼저 이야기해보겠다. 아내랑 조금 가까워졌을 때 '나는 엄마가 둘이야'라는 말을 들었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 싶었는데 낳아준 엄마는 일찍 아버지와 이혼했고, 재혼한 엄마 손에서 자랐다는 이야기였다. 낳아준 엄마는 타이중(臺中)에 산다. 이후 재혼했지만, 딸들과 자주 만나며 가깝게 지낸다. 재혼한 남편분과도 친하다. 키워준 엄마도 역시 아버지와 이혼했지만 가까운 타이베이(臺北)에 혼자 산다. 아내에게 외가가 둘인 셈인데 경조사도 챙기고 두루두루 교류하며 가깝게 지낸다.

두 엄마를 같이 만날 때도 있다. 아내와 코로나 시국에 결혼식을 못하고 혼인신고를 했다. 그날 웨딩사진을 찍고 가족들과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두 엄마가 모두 참석했다. 둘이 아주 친하다고 할 순 없지만, 전혀 어색하지도 않았다. 그때 또 한 가지 놀랐던 건 아버지와 두 분의 어머니 모두 딸의 결혼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모님께 허락받고 양가 부모가 상견례하는 형식적인 절차도 없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날 함께 식사하면서 '아이를 낳으면 어디에서 키울 거냐?'고 다들 물었다. 이왕이면 대만에서 키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느껴지는 정도였다. 결혼하는 딸에 대한 간섭도 참견도 느껴지지 않았다. 특별한 경우일 수도 있지만 두 나라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한다.

▲ 혼인신고한 날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장인과 두 명의 장모가 모여도 어색함이 없다. 영화 '극한직업'식으로 말하자면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필자

아내를 만나고 대만에 자주 방문하면서 개방적인 대만 문화를 조금씩 접하게 됐다. 아주 초기에 지하철역에서 서로를 껴안고 딥키스를 하는 두 남성을 본 것이 시작이었다. 중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스스럼없이 애정 표현을 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대만 교포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대만이 애들 키우기에 참 좋다. 영어, 중국어 둘 다 배울 수 있고 교육 수준도 높다. 그렇다고 한국만큼 압박이 심하지는 않다. 다만 딸 가진 부모라면 좀 고민이 될 것 같다" 그만큼 이곳은 성적(性的)으로 개방적이고 스스럼이 없다. 외국 유학을 다녀왔던 친구들의 경험도 공통적이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권 유학생들이 가깝게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대만 유학생들이 가장 개방적이다. 성(性)에 대한 엄숙주의가 없다. 성(性)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 나누고 행동도 훨씬 자유롭다. 우리말로 '남사친'과 '여사친' 사이에서도 감정과 분위기가 맞으면 관계를 갖고, 그에 대해 구속도 느끼지 않는 편이다.

문화적 충격이 쌓여갈 즈음 결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2019년 대만에서는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제한적이지만 동성(同性) 부부에게도 입양권이 생겼다. 30년 동안 관련자와 단체들이 노력한 결과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세력과의 충돌도 있었다. 하지만 개방적인 대만 분위기로 볼 때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에 너무 궁금해서 주변의 대만인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대부분 당시 30대 여성들이었다.

"동성애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해가 안 돼." "글쎄. 난 별로야." "나에겐 동성애자 친구가 몇 명 있는데 좋은 사람들이야."

"그럼 이번에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나보고 여자랑 결혼하라는 얘기는 아니잖아. 상관없다고 생각해." "나랑 다를 뿐이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나중에 네 아들이 다른 남자랑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이해가 안 되겠지. 충격을 받을 것 같아." "그래도 어쩌겠어? 자기 인생인데."

▲ 2025년 10월 대만에서 열린 게이 퍼레이드. 공식 명칭은 '타이완 LGBT 프라이드(Taiwan LGBT Pride)'이며,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리는 퍼레이드를 제외하면 아시아 최대의 행사다. ⓒTaiwan LGBT Pride 2025 홈페이지

딱 이 정도 생각이었다. 동성결혼 찬반 세력이 각각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서로 충돌할 때, 대만 젊은이들은 찬성 세력을 지지했다. 적어도 혐오하지는 않았다. 찌는 듯한 더위에 아스팔트 위에 선 시위대에게 물과 음식을 사다 주기도 했다. 자신들이 동성애자라서가 아니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혐오 당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회적 개방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소수자 포용이다. 이 부분에서 한국과 대만의 차이는 두 나라의 택배 속도 차이만큼이나 크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이 논의되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큰 진전이 없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고, 나 역시 동의한다. 사회적 합의 없이 제도적인 변화만으로 갑자기 사회적 개방성이 높아지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대만에는 차별금지법에 해당하는 법이 없다. 차별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니니 굳이 법으로 정할 필요가 없었을 터이다. 인종, 국적, 종교, 성정체성, 경제적 지위, 학벌 등에 따른 차별은 제도적으로만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없다. 하지만 비제도적 차별은 눈빛이나 말투에서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대만에 살면서 그런 차별을 느껴본 적이 없다.

얼마 전 친척 결혼식에 아기를 데리고 갔는데 신부가 대만 원주민이었다. 전통 복장과 영상에 등장하는 신부 소개를 보고 그런 느낌이 있어서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한국인 남편을 만난 것이나, 원주민 신부를 만난 것이나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아내의 엄마 중 한 분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데, 그 입맛에 대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생 불편한 시선을 느끼며 살았는데 말이다.

대만에서 동성 커플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동성 커플이라는 걸 알아차리기도 어렵지 않다.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대중교통에서 만나는 일도 한국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다. 아기나 반려동물을 데리고 공공장소를 찾는 사람들도 훨씬 많다. 한국보다 동성애자, 장애인, 반려동물, 아기가 더 많아서가 아니다. 불편한 시선이 없기 때문이다.

직전 대만 총통이었던 차이잉원(蔡英文) 전 총통은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인물이다. 대만국립대 법학부 학사, 미국 코넬대 법학 석사, 영국 정경대 법학 박사 학위를 가진 그는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이다. 그녀의 조부는 대만 본성인 중에서도 소수인 객가인(客家人)이고, 조모는 파이완족(排灣族) 원주민이다.

그녀는 2016년에 탕펑(唐鳳)이라는 젊은 천재 프로그래머를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에 임명했다. 그는 대만 사상 최연소 장관이고, 세계 최초의 트랜스젠더 장관이기도 하다. 이미 십 년 전 이야기다. 대만에서 채식 인구는 전체의 10%이다. 거리에는 중년, 노년에도 긴 생머리나 단발로 다니는 여성이 많다. 처음엔 그게 참 어색하게 보였다. 한국에서는 나이에 맞는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이 일반적이다. 최근 한국의 영포티(Young Forty) 논쟁도 대만 사람들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

▲ 2016년 취임한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 차이잉원(蔡英文)과 그가 임명한 35세의 트랜스젠더 장관 탕펑(唐鳳).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었던데 비해,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은 소수 집단인 객가인(客家人)과 대만 원주민 혈통이었다. ⓒ나무위키

아내가 한국의 속도에 놀란다면, 나는 타이완의 개방적인 문화에 놀란다. 타이완은 구대륙인 아시아에 있지만, '민족국가'보다 '이민국가'에 가깝다. 서로 다른 시기에 중국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대만해협을 건넌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왔다. 서로 다른 게 당연했고, 다양한 문화가 익숙했다.

물론 개방적인 대만 문화에도 장단점이 있다. 팔십이 넘은 처고모에게서 이런 한탄을 들은 적이 있다. "집 앞으로 '게이 퍼레이드'가 지나가는데, 중요 부위만 마스크로 가린 남자가 있더라. 왜 내가 이 나이에 내 집 앞에서 그런 꼴을 봐야 하나?" 퀴어(Queer) 문화를 지지해온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다양성은 복잡성일 수도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대만 사회의 다양성이 드러나면서 불만을 갖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획일적인 한국 문화 속에 자란 나는 타이완이 가진 개방적인 문화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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