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성공 신화의 이면에는 늘 '대학'이라는 배경이 존재한다. 공동 창업자를 만나고, 첫 투자자를 설득하며, 시제품의 기틀을 닦는 장소가 바로 캠퍼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에서 실제 투자 유치에 성공한 창업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어디일까.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피치북(PitchBook)이 2014년 1월부터 2025년 9월 1일까지 벤처캐피털(VC) 투자를 받은 창업가 17만 3,000여 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미국 서부의 명문 UC버클리가 학부 졸업생 기준 '창업가 배출 대학' 1위에 올랐다.
이번 조사에서 UC버클리는 총 1,804명의 창업가를 배출하며 1위를 차지했다. 전통의 강자로 꼽히는 스탠퍼드 대학교(1,519명)와 하버드 대학교(1,355명)를 여유 있게 따돌린 수치다.
UC버클리 출신의 대표적 창업가로는 구글의 자율주행 프로젝트 '웨이모(Waymo)'의 기틀을 닦은 앤서니 레반도프스키가 꼽힌다. 그는 학창 시절 국방부 주최 자율주행 경연대회에 참가하며 기술력을 쌓았는데, 당시 개발한 초기 모델이 현재 웨이모의 근간이 되었다. 캠퍼스 내의 도전적인 환경이 곧바로 거대 테크 기업의 탄생으로 이어진 셈이다.
상위 20개 대학 중 15개교가 미국에 위치해 있어 여전한 미국 편중 현상을 보였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4위, 1,206명), MIT(5위, 1,131명), 코넬 대학교(6위, 944명) 등이 최상위권을 형성했다.
하지만 미국 밖 대학들의 추격도 매섭다. 특히 이스라엘과 캐나다 대학의 성장이 독보적이다. 이스라엘의 테크니온 공대(10위)는 전년 대비 순위가 6계단이나 상승했으며,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교 역시 8계단 뛰어오르며 글로벌 창업 생태계의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교(7위, 865명) 역시 텍사스 대학교(8위), 미시간 대학교(9위)를 앞서며 테크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글로벌 기업의 고위 경영진들에게 이 같은 수치는 단순한 대학 서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창업가를 많이 배출한다는 것은 해당 학교가 독립적 사고와 혁신적 실행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버드와 스탠퍼드는 각각 '이노베이션 랩(Innovation Labs)'과 '스타트엑스(StartX)' 같은 강력한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학생들의 창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유망한 인재를 영입하거나 인수합병(M&A) 대상을 물색할 때 이들 대학 출신들의 행보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미국 대학들이 압도적인 성과를 내는 배경에는 자율적인 연구 환경과 실패를 용인하는 투자 문화가 맞물려 있다. 반면 이번 조사에서 한국 대학의 이름은 상위권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테크니온 공대가 괄목할 성장을 이룬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이 단순한 지식 전달 창구를 넘어,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창업 베이스캠프'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국가 경쟁력이 확보된다는 사실을 이번 지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인재 전략이 미국 중심으로 고착화된 점은 아쉽지만, 캐나다와 이스라엘의 사례처럼 대학 주도의 혁신 모델이 확산된다면 창업 지형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국내 대학들 또한 취업률 지표에 매몰되기보다, 제2의 웨이모를 탄생시킬 실질적인 창업 지원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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