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4050세대가 감정이입하면서 화제의 작품이 되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정글 같은 회사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를 밀어내고 상사에 달라붙는 ‘버티기 신공’에 나서는 그의 모습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을 투영하고 있다.
기자가 이 드라마에서 주목한 점은 그렇게 버티던 드라마 속 주인공 김낙수 부장이 회사를 떠나는 시기다. 그의 나이 53세. 실제 한국 직장인의 평균 퇴직 연령은 52.9세다. 법적 정년은 60세이나 대부분 그 전에 회사를 떠나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후는 제대로 준비됐다고 하기 어렵다. 통계에 따르면 50대 가구의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74.6%나 된다. 한마디로 수중에 현금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60대는 81.2%나 된다.
집값을 깔고 살다 보니 노후가 불안하다. 드라마 속 김 부장도 이 때문에 건물 투자 사기를 당했다.
국민연금이 있으나 한 달 들어오는 돈은 평균 86만 원이다. 그것도 만 65세가 되어야 수령할 수 있다. 2025년 KB골든라이프 보고서에 따르면 은퇴한 부부가 적정한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월 350만 원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으로는 편안한 노후가 불가능하다.
베이비부머가 지방에 내려가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로드맵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가 쓴 <베이비부머 리턴즈 - 60년대생의 두 번째 인생 프로젝트>(수수리 펴냄, 김지원 공저)는 드라마 속 김 부장과 같은 문제를 안은 세대를 '베이비부머(1955년생부터 1974년생)'라 칭하며 이들의 은퇴 이후 삶은 사회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마 교수는 그간 지방소멸, 베이비부머 관련된 연구와 집필을 해왔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로 평균(14%)보다도 3배 정도 높다. 노인 일자리가 저임금 등 불안정 노동이기도 하고 기초연금, 공적 지원제도 등도 OECD 국가 중 낮기 때문이다.
고령인구의 '증가 속도'는 더 큰 문제다. OECD 국가의 지난 10년간 고령인구 연평균 증가율은 2.6%이지만 우리나라는 연평균 4.4%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속도가 빨랐다. 앞으로는 더 큰 문제다. 고령인구 증가율은 향후 20년간 더 큰 폭으로 뛸 것이기 때문이다.
마 교수는 앞으로 닥쳐올 노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마냥 지적만 하는 건 아니다. 마 교수는 이 책에서 세 가지, '60년대생-지방-중소기업'을 연결하는 작업을 이제라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60년대생, 즉 베이비부머가 지방에 내려가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로드맵, 일명 '3자 연합모델'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은퇴 후 지방에서 살고 싶어하는 베이비부머
3자 모델의 첫 번째인 '지방'을 살펴보자. 현재의 지방은 '슈퍼 메가시티'인 수도권에서 일거리와 먹거리 등을 모두 빨아들이면서 인구소멸로 인해 힘을 계속해서 잃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기초지자체 226곳 중 수도권과 지방 5대 광역시를 뺀 120곳 중 인구 20만 명 이하 지역은 98곳에 이른다. 문제는 지난 10년(2015~2024년)간 인구가 줄지 않은 곳은 고작 16곳 뿐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인구가 줄어들면 남은 인구 1인당 세금은 더욱 늘어난다. 인구가 20만 명에서 15만 명으로 감소할 때 주민 1인당 세출액은 448만 원에서 88만 원이 더 늘어난다. 15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줄어들면 그 증가 폭은 154만 원으로 더 커진다.
인구가 줄면 지자체가 쓰는 세출도 줄어야 하지만 이는 여의치 않다. 100가구가 살던 마을이 10가구가 살게 됐다고 전기 공급이나 상하수도 관리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돈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줄어드는 인구의 대부분은 20~30대라는 점이다. 행정안전부가 2021년 인구감소 위기를 맞은 89곳을 선정했는데 이들 지역의 최근 5년(2020~2024년) 인구 유입 패턴을 보면 83곳(93%)에서 20~30대는 빠져나가지만, 40~60대 초반은 들어오는 패턴이 나타났다. 한마로 청년은 사라지고 노인층만 늘어난 셈이다.
마 교수는 이러한 지방에 베이비부머가 내려가서 살게 하자고 제안한다. 실제 베이비부머도 지방에 내려가서 사는 것을 원한다는 응답이 지배적이다. 토지주택연구원에 따르면 수도권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 1000명 중 75%는 ‘이주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도시에서의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 교수는 이들이 지방에 내려오면 지역활성화는 물론 지역경제도 부상할 뿐만 아니라 인프라도 재정비할 수 있는 장점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넘어야 할 산도 존재한다. 지방에 내려가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마 교수는 그 대안으로 '중소기업'을 제시한다. 지방의 중소기업은 반복적으로 인력난에 시달린다. 급기야 외국인 노동자를 찾지만, 임금이 저렴한 편도 아니다. 이들에게는 숙소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설사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했다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로만 회사를 채울 수는 없다. 회계, 관리, 인사 등에서 한국 정서를 갖고 말이 통하는 직원이 있어야 회사가 굴러가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일하던 베이비부머가 지방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모델을 마 교수가 제안한 이유다.
마 교수는 이를 실행하기 위한 조건으로 구직자와 구인 기업 간 매칭해주는 플랫폼, 3개월 인턴제, 정부의 기업 지원금 지급, 주 3일 근무제 등을 언급했다.
마 교수는 '3자 모델'은 베이비부머, 중소기업, 지방(농어촌 지자체, 혹은 정부), 이 3자가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베이비부머는 임금을 양보하고, 중소기업은 이들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렇게 지방에 유입된 베이비부머는 지역 세수를 늘리고, 그에 따라 지자체는 주택, 의료, 교육 등 인프라를 지원할 수 있고 중소기업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 돌고 도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3자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협력 모델인 셈이다.
"연금, 청년 일자리, 주택 문제라는 세 가지 사회적 난제를 동시에 풀어낼 잠재력 지녔다"
다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듯이, 지역 상황과 각각 베이비부머의 상황, 그리고 지역별 중소기업의 조건 등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마 교수는 경상남도 함양군 서이초등학교 모델로 이를 자세히 설명한다.
폐교 직전인 서이초를 살리기 위해 경상남도, 함양군, LH,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서이초 교직원, 마을주민들이 학부모를 위한 집과 일자리를 동시에 마련하고자 했던 이 사례는 전형적인 '3자 모델'이다. 이를 통해 집을 마련하는 방식, 일자리를 얻는데 생기는 문제 등을 책은 살펴본다.
한발 더 나아가 실제 '3자 모델'을 진행하는 곳을 찾아가 지역 내 기업, 귀촌 예정자, 군청 관계자 등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도 듣는다. 그러면서 '3자 모델'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마주한 제약과 제도적 과제, 그리고 모델이 가져올 변화의 잠재력 등을 하나씩 살펴본다.
마 교수는 '3자 모델'을 두고 "연금, 청년 일자리, 주택 문제라는 세 가지 사회적 난제를 동시에 풀어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며 "베이비부머가 원할 때, 귀촌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금의 흐름에 '추임새'를 더해 준다면 그것이 곧 지역을 살리고 나라도 살리는 강력한 한 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도권 과밀, 지방소멸, 노인 빈곤, 청년 취업, 중소기업 폐업 등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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