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은 얼마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은 2026년도 총지출 728.0조 원이라는 거대한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구체적인 숫자로 치환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정식 예산안은 전년 대비 8.1%라는 공격적인 확장 기조를 선택했다. 그 팽창의 중심에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핵심, 생계급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예산안은 4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 수급액이 사상 처음으로 200만 원을 돌파하는 시대를 열었다. 이는 단순한 금액의 인상을 넘어, 한국 사회 안전망의 기준점인 기준 중위소득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치열한 정치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6.51%의 도약: 복지 엔진의 배기량을 키우다
모든 복지 정책의 설계도 역할을 하는 기준 중위소득은 2026년 4인 가구 기준 6.51% 인상된 649만 4,738원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제도가 도입된 이후 역대 최대폭의 인상률이다. 1인 가구의 경우 인상 폭이 더욱 가팔라 7.20% 오른 256만 4,238원으로 확정되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생계급여 선정 기준(중위소득의 32%)을 자연스럽게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4인 가구가 매달 받는 생계급여 최대 지급액은 195만 1,287원에서 207만 8,316원으로 12만 7,029원 늘어났다. 1인 가구 역시 월 82만 556원을 보장받게 되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제77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이번 결정은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고통받는 취약계층의 생활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의지를 담았다며, 기준 중위소득 인상을 통해 약 4만 명의 신규 수급자가 혜택을 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숫자의 이면에는 과거 통계와 현실 사이의 깊은 간극을 메워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했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그동안 기준 중위소득은 가계금융복지조사 통계와의 격차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역대급 인상은 그 12.49%에 달하는 누적된 격차를 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해소하겠다는 계획의 일환이기도 하다. 즉, 이번 인상은 정부의 시혜적 배려라기보다 비정상적으로 낮게 설정되었던 복지의 기준선을 정상화하는 과정에 가깝다.
국회 시정연설과 2,000명의 감시자들
지난 11월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02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생계급여 200만 원 시대의 의미를 직접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취약계층의 생활을 두텁게 보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굳건히 지키겠다며, 기준 중위소득을 역대 최대폭으로 인상해 4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를 매월 200만 원 이상 지원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는 빈곤층을 향한 현금성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내수 경기를 부양하고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겠다는 핵심 국정 철학을 예산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러나 국회 심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국민의힘 측은 51.6%에 달하는 국가채무 비율을 언급하며, 확장적 재정 정책이 초래할 미래 세대의 세 부담 증가를 우려했다. 특히 이번 예산에는 생계급여 확대와 궤를 같이하는 산재 예방 및 공정 일터 구축을 위해 근로감독관 2,000명을 증원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논쟁을 불렀다.
조국혁신당 김재원 위원은 예산안 토론회에서 과거 정부가 추진했던 극단적 긴축과 선택적 재정으로 인한 균열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방 청년 고용 재설계와 같은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생계급여와 같은 직접적인 현금 지원이 일시적인 고통 분담을 넘어 탈빈곤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복합적인 주문을 반영한다.
자동차 재산과 청년의 자립: 숨겨진 규제의 완화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은 수급자 선정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재산 산정 기준의 유연화다. 그동안 1,000cc 미만, 차량 가액 200만 원 미만의 소형차로 한정되었던 자동차 일반재산 환산율 적용 기준이 2026년부터는 500만 원 미만으로 상향 조정된다. 특히 생업에 필수적인 소형 화물차의 경우에도 이 기준이 적용되어, 트럭 한 대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하던 농촌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고질적인 불만이 일부 해소될 전망이다.
청년들에 대한 근로 인센티브도 강화되었다.
기존 만 29세 이하 청년에게만 적용되던 근로소득 공제 대상이 만 34세 이하로 확대되었고, 공제 금액 역시 월 40만 원에서 60만 원으로 대폭 인상되었다. 이는 청년들이 일해서 번 소득이 급여 삭감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여 경제적 자립을 독려하려는 전략이다.
시민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분석 보고서를 통해 기초생활보장 예산의 전반적인 확대 기조는 긍정적이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전 폐지를 이행하지 못한 점과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의 불충분성은 여전한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728조 원이라는 거대한 재정 투입이 빈곤의 구조적 개선보다 관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728조 원이 지탱하는 마지막 선
생계급여 200만 원 돌파는 2026년 한국 재정이 선택한 가장 선명한 좌표다. 국가채무 비율이 50%를 넘어서는 재정적 위험 속에서도 이 선을 사수한 것은, 사회 안전망의 붕괴가 초래할 사회적 비용이 재정 적자보다 훨씬 크다는 판단에 기반한다. 이제 공은 집행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역대급 인상률이 단순한 통계적 현행화를 넘어, 160만 명에 달하는 수급자들의 삶에 실질적인 온기를 전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한국의 대담한 실험을 주목하고 있다. 728조 원의 무게는 결국 가장 가난한 이들의 식탁 위에서 증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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