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자산과 배경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인식과 달리 국내에서도 자수성가형 부자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한국 부자의 수가 47만여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이들 중 상당수는 상속과 증여에 의존한 금수저가 아닌 스스로 자산을 축적한 자수성가형 부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5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한국 부자는 2011년 13만 명에서 2025년 47만 6천 명으로 15년 만에 3배 이상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은 약 9~10% 수준으로 같은 기간 전체 인구 증가율을 크게 웃돈다.
단순히 부자가 늘었다는 사실보다 주목할 부분은 '어떻게 부를 이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부동산 투자와 상속·증여가 부의 형성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사업소득, 근로소득, 금융투자 이익 등 보다 다양한 경로가 부의 원천으로 부상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동산 가격 상승과 부모 세대의 자산 이전이 부의 핵심 동력이었다면 이후 금융시장 접근성이 높아지고 개인투자 문화가 확산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스마트폰 보급과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의 확산, 저금리 환경 속 유동성 증가,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자산 가격 랠리'는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을 기반으로 금융투자에 나선 개인들이 자산을 빠르게 불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주식과 펀드, 채권, 대체자산을 적극 활용한 개인들이 새로운 부자층으로 편입됐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근로·사업 기반 부자'의 증가다. 부자 상당수가 첫 종잣돈은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으로 마련했다고 응답했다. 이후 금융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려 부의 기준선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는 부모의 자산 이전이 거의 유일한 출발점으로 여겨지던 과거와는 분명히 달라진 것이다.
자산 구성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한국 부자의 자산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부동산 비중이 가장 크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금융자산 비중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자 가구의 총자산 가운데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대 중반 수준으로 여전히 높지만 주식과 예·적금, 기타 금융자산의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지난 1년간 주식 투자에서 수익을 경험한 부자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금융자산 전반의 성과를 견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부자는 부동산으로만 돈을 번다'는 고정관념을 흔드는 대목이다.
부자들의 인식 변화도 자수성가형 부자 증가와 맞물려 있다. 부자들이 꼽은 성공적인 자산관리의 핵심 요인은 '지속적인 금융지식 습득'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위험 관리를 위한 분산 투자, 명확한 투자 원칙 설정, 시장 변동성에 대한 이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단순히 운이나 한 번의 부동산 투자로 부를 이뤘다는 인식보다는 장기간에 걸친 학습과 판단, 그리고 반복적인 의사결정이 부를 만든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상속과 증여는 여전히 한국 부의 중요한 축이며 고액 자산가일수록 부모 세대의 자산 이전 비중이 높은 경향도 뚜렷했다. 초고자산가 계층에서는 자산 증가 속도가 더 빠르고 자산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실상 부자 내부에서도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지만 부자가 되는 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정한 소득과 투자 기회를 가진 개인이라면 시간과 전략에 따라 부의 경계선에 도달할 수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정책의 방향 역시 단순히 자산 증식을 장려하는 차원을 넘어 금융교육 확대와 정보 격차 완화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자수성가형 부자가 늘었다는 사실은 긍정적 신호지만 이를 사회 전반의 기회 확대라는 성과로 연결하려면 금융 이해력 교육, 투자 정보 접근성, 위험관리 시스템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유형의 금수저'가 등장할 뿐 격차는 더욱 고착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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