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스틸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가 국내에서 개봉한 지 21년이 흘렀다. ‘실미도’ 이후 두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인 이 영화는 국내에서 '눈물 짜내는 전쟁 신파'라는 평가와 '한국 블록버스터의 이정표'라는 상반된 시선을 동시에 받아왔다. 흥미롭게도 해외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영화를 읽어냈다. 로튼토마토 79% 신선도, IMDb 관객 평점 8.0, 제50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 그리고 2005년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한국 대표 출품작 선정. 한국전쟁이라는 낯선 소재를 다룬 이 영화가 어떻게 국경을 넘어 20년 넘게 인정받고 있는지 구체적인 해회 평가를 통해 재조명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스틸
'태극기 휘날리며'엔 장동건과 원빈이 형제로 출연한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강제 징집된 형 이진태와 동생 이진석이 전장에서 겪는 비극을 그린다. 형은 동생을 전장에서 살려 보내기 위해 스스로 전쟁의 폭력에 몸을 던지고, 동생은 그런 형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전쟁의 정치적 배경이나 이념 대립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대신 전쟁이 한 가족을, 한 개인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만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로튼토마토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는 79%의 신선도를 기록 중이다.
해외 평단의 반응은 수치로 먼저 확인된다. 영화 평점 집계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는 24일 현재 79%의 신선도를 기록 중이다. 외국어 영화, 특히 비영어권 전쟁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다. 영화는 2004년 미국에서 'Brotherhood' 제목으로 개봉했고, 2005년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한국 대표작으로 출품됐다. 비록 최종 후보 5편에는 들지 못했지만, 한국 전쟁영화가 아카데미에 출품됐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로서는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 스틸
국제 영화제 성과도 뚜렷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2004년 제50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시아를 넘어 태평양 지역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다는 건 단순한 흥행 성과를 넘어 작품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다.
해외 관객의 반응은 온라인 평점을 통해 확인된다. 영화 평점 사이트 IMDb에서 이날 현재 '태극기 휘날리며'는 8.0점을 기록하고 있다. 256건의 해외 관객 리뷰가 등록돼 있는데, 외국어 전쟁영화로서는 꽤 높은 점수다.
영화 평점 사이트 IMDb에서 이날 현재 '태극기 휘날리며'는 8.0점을 기록하고 있다.
IMDb에 등록된 리뷰들은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미국 관객 한 명은 "남한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내가 본 전통적 전쟁영화 중 최고다. 전투 장면은 스필버그의 고전 영화보다 강렬하고 잔인하다"며 10점 만점에 9점을 줬다. 또 다른 미국 관객은 "이 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낫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빠진 함정을 피했다"며 10점을 줬다.
영화 전문 사이트 에인트 잇 쿨 뉴스(Ain't It Cool News)의 편집장은 2005년 1월 '2004년 최고의 영화 10편' 중 1위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선정했다. 당시 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세익스피어 인 러브’에 진 걸 보고 비명을 질렀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찾아서 ‘태극기 휘날리며’가 거의 모든 전쟁영화보다 얼마나 나은지 깨달아라"고 썼다. 그는 "헐리우드의 전쟁영화를 보고 자랐지만 이건 정말 놀랍다. 올해 만들어진 어떤 영화보다 큰 스펙터클이지만, 형제 이야기만큼 친밀하다"고 평가했다.
한 미국 관객은 "전쟁의 공포를 보여주는 영화는 많지만 대부분은 전쟁을 필요악으로 그린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반전 영화가 아닌 이유다. 하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을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악으로 그린다. 전쟁은 고귀하지 않으며, 양측 모두 끔찍한 일을 한다"고 분석했다.
2004년 개봉 당시 에인트 잇 쿨 뉴스에는 한 영국인 관객의 상세한 리뷰가 게재됐다. ‘Filmrage’라는 아이디를 사용한 이 관객은 서울 종로의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후 "지금까지 만들어진 영화 중 최고의 전쟁영화가 될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그는 리뷰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윈드토커’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며 "1300만 달러로 할리우드 영화가 최소한 1억 달러를 들여야 할 영화를 만들어냈다"고 썼다. 또한 "전투신 전체를 삭제하고도 여전히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정도로 드라마가 뛰어나다"고 했다. 아울러 "특수효과는 환상적이다. 특히 1300만 달러라는 제작비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고 평가했다.
이 영국인 관객은 영화의 정치적 중립성에도 주목했다. "강제규 감독의 영화는 단연코 비정치적이다. 이 영화는 남북 양측에 어떤 평가도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전쟁의 희생자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가족, 친구 그리고 자기 자신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형제간의 사랑은 훌륭하게 나타나고 이 영화의 심장이고 영혼"이라고 평가햇다.
한 관객은 "한국인으로서 이 영화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서양인들은 이 영화가 과장됐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실제로 한국의 관습과 문화, 역사의 일부다. 한국어를 말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많은 의미가 사라지고 자막으로는 표현될 수 없다"며 10점 만점에 9점을 줬다. 또 다른 관객은 "이 영화는 선과 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쟁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관한 것이다. 가장 선의를 가진 군인이나 지휘관도 타락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스틸
특히 감독의 용기를 칭찬하는 리뷰도 눈에 띈다. 한 관객은 "감독이 당시 자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저지른 범죄도 보여준 것에 매우 놀랐다. 이 영화는 전쟁을 미화하지 않는 첫 번째 전쟁영화다. 공포스럽고, 두렵고, 무섭다. 현실처럼"이라고 썼다. 다른 관객은 "이 영화는 양측이 서로에게 저지른 공포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북한과 남한 모두 자국 민간인까지 처형한다"고 분석했다.
이 리뷰는 당시 '올드보이'를 2003년 세계 10대 영화로 선정했던 에인트 잇 쿨 뉴스에 게재됐으며, 이후 한국 영화 팬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됐다. 리뷰 마지막에 그는 "‘태극기 휘날리며’는 4500만 한국인들이 세계를 향해 몇 년 내 뭔가 대단한 영화를 터뜨릴 거라고 알리는 경고의 종소리"라고 평가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스틸
시간이 지나면서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더욱 명확해졌다. 영화는 특정 이념이나 국가의 승리를 찬양하지 않는다. 대신 전쟁 그 자체의 폭력성과 비극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한국전쟁을 전혀 모르는 해외 관객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요인이 됐다. 전쟁의 맥락을 모두 알지 못해도, 전쟁이 인간에게 남기는 상처는 충분히 전달됐다는 평가다.
흥미로운 건 국내와 해외의 평가 차이다. 국내에서는 과잉된 감정 표현이 비판받기도 했지만, 해외 관객들은 이를 전쟁의 비정상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받아들였다. 전투 장면의 사실성과 가족 드라마의 강렬함이 결합한 영화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거장들이 세계 영화계에서 이름을 더 많이 알리기 전 한국영화의 기술력과 서사 능력을 입증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아직 한국영화가 아직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던 시기에 이미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거뒀다. 로튼토마토 79% 신선도, IMDb 8.0점이란 기록만으로도 이 영화가 국경을 넘어 전쟁의 보편적 비극을 전달했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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