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정국은 황제의 손바닥 위에 새겨진 기이한 표식으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윤이 권좌를 향해 나아가던 경선 토론회장,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 선명하게 적힌 붉은 '왕(王)'자가 화상 기록기에 포착된 것이다. 백성들은 이를 두고 "주술의 힘을 빌려 천하를 얻으려는 노골적인 야욕"이라며 수군거렸다. 대윤은 "이웃 할머니가 기세를 내라고 적어준 것뿐"이라며 해명했으나, 이는 오히려 그가 공적인 담론보다 비이성적인 민간 신앙에 취약함을 드러내는 꼴이 되었다.
황비 희건의 기행은 더욱 대담해졌다. 그녀는 주술가 '무정'의 조언을 따라, 전생의 비극이 서린 만년궁(萬년宮, 경복궁의 평행이론)의 곤녕합(坤寧閤)을 찾았다. 그녀는 일반의 출입이 금지된 그곳의 문을 억지로 열게 하고, 남편 대윤과 함께 10분간 머물며 망령된 기운을 나누었다. 심지어 그녀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좌(御座)에 선글라스를 낀 채 오만하게 앉아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조정의 사대부들은 "민주 공화국의 기틀을 흔드는 국보 농단"이라며 격노했으나, 황비는 "잠시 앉았을 뿐 왕이 되려는 목적은 없었다"며 조롱섞인 해명을 내놨다.
부패의 독버섯은 황비의 비단 주머니 속에서 자라났다. 의건은 최(崔) 씨 성을 가진 한 도사로부터 300만 냥에 달하는 비단 명품 주머니(디올 백)를 수수했다.
이 장면이 은밀히 기록돼 세상에 퍼지자 황비 대윤은 이를 "박절하게 내치기 어려웠던 인연을 악용한 정치 공작"이라며 비호했다. 명품 가방을 고작 '조그마한 파우치'라 명명하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는 백성들의 냉소를 자아냈다.
사유화된 권력의 극치는 바다 위에서 펼쳐졌다. 국정이 도탄에 빠진 시기, 황비는 경호처의 호위를 받으며 해군의 지휘정(함정) 위에서 지인들과 비밀스러운 선상 술파티를 벌였다. 노래방 기계까지 동원된 그 연회에서는 밤바다를 수놓는 화려한 폭죽 놀이가 이어졌다. 국가의 안보 자산이 황후의 유흥 도구로 전락한 현장이 폭로되자, 군 내부에서도 "충암파가 군을 사유화했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황제 대윤은 이 모든 추문을 술잔 속에 묻으려 했다. 한남동 관저 내부에 일본식 다다미방과 히노끼 목욕탕을 설치해놓고, 외부와 단절된 채 충암파 측근들과 독주를 마시며 망상에 빠져들었다. 정의로운 칼잡이에서 술잔에 기댄 폐인으로, 그리고 주술에 포획된 여인의 수호자로 전락한 대윤의 치세는 그렇게 스스로 파놓은 무덤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손바닥 '왕'자에서 시작된 주술적 광기가 경복궁 어좌 점유와 명품백 수수를 거쳐 국가 무력의 사유화(선상 파티)로 이어지는 과정을 비극적 필연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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