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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지금 세계 경제의 상황을 보면 성장력은 점차 내려가는 추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2024년 3.3%에서 2025년 3.2%로 하락했고 2026년에는 이보다 낮은 3.1%를 전망하고 있다. 물론 전망이란 여건 변화에 따라 수정되기 일쑤지만 실물 경제가 힘이 빠지고 있다는 추세를 보여준다. 이유야 어떻든 대부분의 나라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정 여력이 고갈된 이후에도 재정 지출을 늘리고 있다. 즉, 세계 경제는 민간 부문이 아닌 정부 지출로 버티고 있다. 정부도 땅을 파서 돈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가 좋아지지 않아 세수가 확충이 안 되면 경제를 떠받치던 재정이 파탄 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프랑스의 재정위기다. 만약 지금 유일한 성장 동력인 재정을 잃어버리게 되면 세계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걱정이다.
둘째, 통화정책이 방향성을 잃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주요국들이 잇따라 긴축적인 금리 기조로 이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미국은 아직 금리를 내릴 여력이 충분하다. 특히 2026년 5월 지금의 강경 매파인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저금리를 선호하는 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인사로 바뀌게 되면 금리 인하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러한 금리 인하 기조는 2026년까지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지금 미국 경제가 괜찮은 이유는 강 달러 때문이다. 달러화가 약세라면 수입에 의존하는 바가 높은 미국 경제 구조상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수준이 될 수 있고 국민의 구매력이 약화하면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붕괴할 수 있다. 결국 2026년 말 이후에는 아무리 친트럼프 인사인 연준 의장이라 하더라도 정책금리를 빨리 내린 것을 후회하면서 다시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로 돌변할 수 있다. 참고로 파월 의장도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취임하자마자 금리를 계속 올린 바 있다. 미국을 제외한 많은 나라들이 일찌감치 금리를 최대한 내렸고 이제는 금리 정책 방향이 전환할 것이라는 예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은행도 2025년 마지막 기준금리를 연 2.5%로 또다시 동결했다. 이는 모두가 예상했지만 그 배경을 설명하는 자료를 보면 추가 인하의 ‘여부’(與否)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기존에는 추가 인하 자체를 부정(否)하는 표현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달러화가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와 닉슨 쇼크 이후 국제금융시장은 미국 정부의 신용에만 근거한 달러화 기축통화 시스템에서 안정적인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이는 달러화 가치가 암묵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닻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즉 미국이 글로벌 교역에서 적자를 내면서 달러라는 세계 통화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반대로 강 달러를 통해 자본 계정에서는 미국으로의 글로벌 유동성 유입을 촉진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순환되는 시스템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정확히 지금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결국 금융시장은 가치 기준이 되는 달러화가 사라지면서 금융 권력이 다변화되고 혼란이 가중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2025년까지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 경제위기라고 부를만한 블랙스완은 없었다. 그동안의 위기를 보면 대부분 금융시장의 혼란에서 시작했다. 2026년 이후 국내외 금융시장에 큰 혼란이 올 가능성이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어쩌면 2008년 금융위기나 2012년 재정위기와 같은 수준의 경제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시장을 받치는 근본적인 성장 동력이 없어 정부부채로 버티는 와중에 금리까지 올라가는데 이때 중심을 잡아줄 앵커가 없기 때문이다. 블랙스완이란 말 그대로 그러한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러나 언급된 금융시장의 위기는 블랙스완이 아니다. 현실화할 가능성이 만만치 않게 높아 보인다. 부디 이 불안한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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