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인천)=류정호 기자 |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디펜딩 챔피언’ 흥국생명의 베테랑 세터 이나연(33)은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남편과 함께 집에서 TV로 중계를 보던 ‘시청자’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올해 크리스마스이브, 그는 다시 코트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승리 주역으로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나연은 2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의 V리그 여자부 홈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흥국생명의 세트스코어 3-0 완승을 이끌었다. 20일 페퍼저축은행전에 이어 2경기 연속 선발 풀타임 출전이었다. 이나연이 한 경기 모든 세트를 책임진 것은 현대건설 소속이던 2020년 11월 29일 이후 약 5년 만이다.
코트로 돌아온 그의 표정엔 부담과 즐거움이 함께 묻어났다. 이나연은 “팬의 입장에서 배구를 볼 때는 스트레스가 전혀 없었다”며 웃은 뒤 “지금은 다시 선수라 TV로 배구를 보면 ‘매우, 몹시’ 스트레스받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 스트레스만큼 흥국생명의 성적도 함께 상승 중이다. 이나연이 선발로 나선 2경기에서 흥국생명은 모두 승리하며 3연승을 달렸다. 승점 28로 4위(승점 23) GS칼텍스와 승점 차를 벌리는 데 성공했다.
이나연은 2011-2012시즌 신생팀 우선 지명으로 IBK기업은행에 입단해 GS칼텍스와 현대건설을 거치며 10년 넘게 코트를 지켰다. 그러나 2023-2024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고, 지난해 여름 자유신분선수로 공시됐다. 이후 포항시체육회에서 실업 선수로 뛰던 그는 올해 MBC 배구 예능 프로그램 ‘신인감독 김연경’에 출연하며 배구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필승 원더독스의 주전 세터로 나섰던 이나연은 김연경(37) 감독의 혹독한 지도 속에서 잊고 있던 승부욕을 되찾았다. 이나연은 “그때는 1년 가까이 훈련을 못 한 상태라 체력과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을 보는 김연경 선배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돌아봤다.
프로 복귀를 결심한 배경엔 미련이 있었다. 이나연은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그렇게 끝낸 것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며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코트로 나를 불렀다”고 말했다. 남편의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라”는 격려 역시 큰 힘이 됐다고 했다.
흥국생명은 시즌 초반 2승 4패로 출발했으나, 반등에 성공해 3위권 경쟁 중이다. 요시하라 도모코(55) 흥국생명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에 어떻게 들어갈지를 생각하고 있다”고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다. 요시하라 감독은 ‘키 맨’으로 이나연을 꼽으며 “서브 리시브가 흔들릴 때 볼 배급은 더 좋아질 여지가 있지만, 대화를 거듭하면 분명 성장할 것이다”라고 힘주었다.
이나연 역시 욕심을 경계했다. 그는 “멀리 보면 부담이 커진다. 눈앞의 한 경기만 보고 달리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지난해 겨울 TV 앞에서 배구를 보던 시간과는 전혀 다른 내년 봄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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