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곽호준 기자 | 실내로 울려 퍼지는 엔진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빗길에서도 흔들림 없는 주행 밸런스를 선사한 '에미라'는 로터스 특유의 '불편한 스포츠카'란 고정관념을 단번에 지워버렸다.
정확히 5년 전, 로터스를 마지막으로 경험해 본 차량이 '엑시지'였다. 이제는 단종돼 신차로 만나볼 수 없지만 엑시지의 지향점은 명확했다. 1000kg 이하로 경량화하기 위해 웬만한 편의 기능은 걷어내고 오로지 빠르고 하드코어 한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춘 스포츠카였다.
시종일관 실내로 유입되는 소음, 성인 남성도 돌리기 힘든 유압식 스티어링 휠, 허리 통증을 유발하는 무자비한 서스펜션과 시트. 그 어느 하나 운전자를 배려한 요소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극단적이긴 하나 당시 엑시지를 타보며 로터스를 "일상에서 함께 하기에는 어려운 스포츠카를 만드는 브랜드"로 결론지었다.
에미라는 이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렸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말이 떠오를 만큼 현대적으로 바뀐 실내가 그중 하나다. 은빛 알루미늄 패널이 훤히 드러났던 과거와는 달리 온갖 고급 소재로 인테리어를 꾸몄다. 나파가죽으로 덮은 시트, 스웨이드 마감, KEF 오디오 시스템은 고급스러움을 넘어 호사롭다.
'For the drivers(운전자를 위한)', 로터스가 모토로 내세운 문구다. 에미라는 이에 걸맞게 대부분의 조작계를 운전자 중심으로 배치했다. 그만큼 각종 레버와 D컷 스티어링 휠에 배치한 각종 버튼은 직관적이고 조작감도 편하다. 큼지막한 12.3인치 계기판과 10.25인치의 중앙 디스플레이는 인터페이스도 간결하며 시인성이 좋다. 애플카플레이·안드로이드 오토도 무선으로 지원해 내비게이션에 대한 걱정도 덜어준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시트 포지션이다. 로터스의 스포츠카답게 컴팩트한 공간감에 세상 낮은 포지션은 오롯이 운전에 집중하기 좋다. 수평적이고 낮은 대시보드 설계 덕분에 전방 시야 확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동식 버킷 시트와 스티어링 휠의 텔레스코픽 조절 범위도 적절해 공간감 대비 시트 포지션을 맞추기 편하다.
흥미로운 점은 페달의 위치와 조작감. 가속 페달의 조작 범위는 생각보다 깊고 브레이크 페달은 왼발로 누르는 게 더 편하다. 협소한 페달 공간이 한몫하지만 마치 레이스카를 연상케 하는 페달 위치·감각은 "로터스답다"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이는 일반 도로가 아닌 서킷과 같은 극한 주행 환경에서 활용하라는 의미겠지만.
에미라의 외관은 매혹적이다. 흡사 페라리를 떠오르게 하는 실루엣은 마치 슈퍼카를 보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에미라는 로터스의 전기 하이퍼카인 '에바이야'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삼았다. 곳곳에 공력 성능을 높인 요소가 매력 포인트. 보닛, 리어 펜더 등에 뚫려있는 커다란 숨구멍은 이 차의 성능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외모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파워트레인에도 고스란히 담았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2.0ℓ 터보 모델로 메르세데스-AMG가 공급하는 4기통 엔진과 기민한 8단 듀얼클러치미션(DCT)을 맞물렸다. '가장 강력한 4기통'이란 명성에 걸맞게 최고출력 364마력, 최대토크 43.9㎏·m를 발휘한다.
제원만으로 이 차의 포텐셜을 단정 지으면 안 된다. 1405kg이라는 가벼운 무게를 앞세워 뒷바퀴를 굴리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4초 만에 도달한다. 최고 속도는 시속 290km에 이르며 스포츠카에 어울리는 스펙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미드십이기에 엔진은 시트 뒤에 위치한다. 덕분에 실내로 여과 없이 울려 펴지는 엔진음은 달리는 재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그런데 같은 엔진을 탑재한 AMG A45나 CLA 45의 엔진음과는 사뭇 다르다.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마치 시합차의 흡기음처럼 '슈우웅~' 울리는 터보 사운드는 색다른 음색으로 다가온다.
비결은 이 엔진을 에미라에 이식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손질을 거쳤기 때문. 로터스는 AMG의 엔진을 미드십 스포츠카에 완벽하게 이식하고자 전용 리어 서브프레임을 새로 제작하고 터보의 위치도 수정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 결과 에미라만의 개성 넘치는 엔진 사운드로 운전자에게 충만한 주행 감성을 선사한다.
주행 모드는 투어, 스포츠, 트랙 3가지. 노멀 모드인 투어에서도 주행 감각이 꽤 날카롭다. 웬만한 고성능 모델의 스포츠 모드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 도로에서는 투어만으로도 주행 퍼포먼스를 충분히 느껴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운전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시종일관 높은 엔진 회전수(RPM)를 사용하고 무거운 유압식 스티어링 휠, 단단한 서스펜션의 탑재로 감각 자체는 묵직한데 엑시지에서 경험했던 '무자비한 불편함'은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하필 시승 날 하루 종일 눈과 비가 많이 내렸다. 마침 시승차에 신겨진 신발은 '윈터타이어'가 끼워져 있던 상황. 빗길에서도 에미라는 운전자에게 달리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한다. 참고로 미끄러운 노면에서는 차량 본연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나온다. 특히 에미라처럼 뒷바퀴를 굴리는 고성능 스포츠카의 경우에는 가속 페달을 갑작스레 깊게 밟거나 급코너를 돌 때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어 항상 "차량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빗길에서 빛을 발한 핸들링과 차체 밸런스가 에미라의 으뜸 매력임을 깨닫게 됐다. 운전자와 조향 축의 거리가 가까운 덕에 보다 직관적인 조향이 가능하고 빗길에서도 노면 피드백을 명료하게 전달한다. 심지어 다소 속도를 올려 미끄러운 굽잇길을 달려도 차체가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젖은 노면도 움켜쥔 채 바닥에 붙어 달려나가는 훌륭한 안정성을 맛볼 수 있다.
친절한 전자 장비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에미라의 차세제어장치는 기대 이상으로 기민하면서도 똑똑하다. 차의 꽁무니가 흐르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면 운전자의 주도권을 최대한 건들지 않는 선에서 슬며시 개입한다.
덕분에 빗길에서도 비교적 자신 있게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다. 발진 가속 시 엔진 특성상 터보랙은 어느 정도 느껴지지만 가벼운 차체 덕분에 주행 감각은 빠르고 경쾌하다. 8단 DCT의 반응 속도는 포르쉐 PDK 못지않게 날쌔다. 이따금 수동변속기처럼 클러치가 연결되고 끊어지는 감각이나 변속 시 전달되는 충격은 마치 시합차를 타는 듯한 운전 재미를 전한다.
이번에 시승한 '에미라 2.0ℓ 터보'의 판매 가격은 1억4990만원부터다. 국내에는 V6 3.5ℓ 슈퍼차저 엔진을 얹은 파워트레인까지 두 가지 라인업을 운영한다. '에미라 V6'는 1억5390만원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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