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공기가 옷깃을 파고들기 시작하면 과일 진열대 풍경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여름 내내 자리를 지키던 복숭아는 자취를 감추고, 대신 귤과 사과가 앞줄을 채운다. 달콤한 향이 먼저 떠오르는 복숭아는 더운 계절의 과일이라는 인식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겨울, 이 익숙한 풍경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한겨울 과일 판매대에서 복숭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설도 복숭아'로 유통되는 이 품종은 여름이 지나면 끝나는 것으로 여겨졌던 복숭아의 출하 시기를 12월까지 넓혔다. 저장 기술로 버틴 과일이 아니라, 나무에서 늦게까지 자라 수확한 신선한 복숭아다.
겨울에도 수확된다, 극만생 복숭아의 등장
겨울 복숭아의 중심에는 극만생 백도 품종이 있다. 정식 품종명은 '진치우홍'이며, 유통 현장에서는 '설도 복숭아'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시장에 따라 ‘설아’, ‘설리’로 불리기도 하지만, 모두 같은 품종이다. 10월 중순부터 11월 초 사이 수확해 12월 초까지 출하가 이어진다.
겉모습은 기존 백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과육이 상아빛을 띠고, 내부에 붉은 기가 은은하게 번진다. 손으로 눌렀을 때 단단함이 느껴지지만, 후숙을 거치면 조직이 차분히 풀리며 쫀쫀한 식감으로 바뀐다. 완숙 기준 당도는 15브릭스 안팎까지 오른다. 여름철 고당도 복숭아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생장 과정은 일반 복숭아와 다소 다르다. 꽃 피는 시기는 비슷하지만, 여름 고온기에는 과일 크기가 크게 자라지 않는다. 이후 9월을 넘기면서 다시 비대가 시작되고, 기온이 내려가는 시기에 당과 향이 차오른다. 기후 조건에 따라 수확 시기가 10월 중순에서 하순까지 달라지기도 하지만, 늦가을 이후에도 안정적인 당도가 유지되는 점이 특징이다.
여름 과일의 공식이 깨진 배경
복숭아는 국내 5대 과일 종류 가운데 유통 기간이 가장 짧은 과일로 꼽혀왔다. 사과나 배처럼 장기 저장이 어렵고, 외국산으로 대체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6월부터 9월까지만 생과로 소비됐다. 품종 수는 많았지만, 출하 시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극만생 품종의 등장은 이 구조를 처음으로 흔들었다. 저장에 의존하지 않고 출하 시기를 자연스럽게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겨울 복숭아는 냉장창고에서 꺼낸 과일이 아니라, 늦가을까지 나무에서 자란 결과물이다. 이 차이는 시장에서 분명한 차별점으로 받아들여진다.
재배지는 점차 늘고 있다. 초기에 소량 생산되던 지역에서 벗어나 전북 순창, 경남 함양 등으로 산지가 확대됐다. 아직 전체 물량은 많지 않지만, 겨울 과일 선택지에 복숭아가 포함됐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백화점과 온라인 판매를 중심으로 꾸준히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설도 복숭아, 보관과 섭취 방법
보관은 일반 복숭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온에서는 빠르게 후숙이 진행되므로, 구매 후 바로 먹지 않을 경우 냉장 보관이 좋다. 다만 냉장 상태에서도 장기간 두기보다는 며칠 내 섭취하는 편이 식감 유지에 유리하다. 손으로 눌렀을 때 지나치게 말랑하면 이미 후숙이 많이 진행된 상태다.
설도 복숭아는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얇게 썰어 요거트나 샐러드에 곁들이면 향이 또렷해진다. 당도가 높아 설탕을 더하지 않아도 충분한 단맛이 느껴진다. 차갑게 식혀 먹으면 과육의 탄력이 더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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