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錄조조] 소설 연재 안내
본 소설은 현 정세의 사건들을 조조, 손권 등의 인물과 탁류파, 청류파 등의 가상 정치 세력으로 치환하여 재구성한 팩션(Faction)물입니다.
서라, 짐짓 '대의를 앞세우나' 실은 사사로운 이익과 권력을 좇는 자들을 탁류파(濁流派)라 칭하고, 그 반대편에서 '청명한 정치를 부르짖으나' 실은 권문세족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을 청류파(淸流派)라 부르노라. 현재 탁류파는 여당인 주민당, 청류파는 야당인 민국의힘이니라. 조조(曹操)는 탁류파의 우두머리이자 대선을 통하여 대권을 잡은 당대 제일의 웅걸 명재이 대통령이다. 조조의 대적이자 청류파가 밀던 인물은 곧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권(孫權, 열석윤 전 대통령)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도 용산, 그 깊숙한 집무실에서 환생한 조조(曹操·명재이 대통령)는 창밖의 차가운 겨울바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서기 2025년 12월 24일, 성탄의 평화가 깃들어야 할 날이었으나 집무실 내부는 난세를 평정하려는 간웅(奸雄)의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그는 과거 낙양북위 시절, 성문에 오색봉(五色棒)을 걸어 법을 어기는 권세가들을 가차 없이 내리치던 그 기개로 현대의 ‘정교유착(政敎癒着)’이라는 괴물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조조의 충직한 변방 전령과도 같은 연규이 홍보소통수석은 오마이TV라는 현대판 저잣거리 방송에 출연해 주군의 엄중한 명을 천하에 공포했다. 연 수석은 조조께서 지위 고하와 여야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하셨다며, 이번 기회에 정교유착 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가자는 것이 조조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는 과거 조조가 제남상(濟南相)으로 부임했을 때, 백성을 현혹하고 관원과 결탁하던 사당 600여 개를 단숨에 허물어버린 일화를 연상시킨다. 조조는 종교의 방패 뒤에 숨어 정치 자금을 세탁하고 선거에 개입하는 행위를 현대판 황건적의 난으로 규정했다. 그는 헌법 제20조 제2항이라는 예리한 칼날을 빼 들며, 정교분리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국가의 근간임을 강조했다 .
탁류파의 구현령과 실용주의 통치술
여당 주민당은 과거 조조의 출신과 같은 탁류파(濁流派)의 길을 걷고 있다. 명분과 가문에 집착하는 청류파와 달리, 이들은 오직 유능함과 결과로써 승부한다. 과거 조조가 내렸던 구현령(求賢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그는 사생활이나 도덕적 흠결보다는 오직 민생을 구제할 재능이 있는 자를 등용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
"간웅이라고는 하지만 조조는 멋있잖아요, 상법 개정하자고 해서 진짜 하는 거. 이런 게 실용입니다"라며, 탁류파 특유의 거침없는 행정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현령의 시스템조차 법치라는 엄격한 기강 아래에 있었다. 조조가 자신의 영을 어긴 자라면 측근이라도 베었듯이, 법 앞에서의 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흡참마속의 결단 : 전재수의 퇴장
난세를 평정하는 길에는 피할 수 없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조조에게 수재전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부산이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던 맹장과 같았다 . 그러나 통일교 관계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조조는 단 하루 만에 그의 사의를 수용하며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단을 내렸다 .
모 방송사의 보도가 나온 다음 날 아침, 조조는 지체 없이 경찰에 성역 없는 수사를 직접 지시했다. 이는 과거 조조가 자신의 군령을 어긴 장수를 처단하며 군의 기강을 바로잡았던 모습과 겹쳐진다. 수 전 장관은 조조 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물러났으나, 조조는 슬픔을 뒤로한 채 법의 위엄을 선택했다.
강동의 손권과 청류파의 수성(守城)
야당인 민국의힘은 스스로를 청류파(淸流派)라 칭하며, 조조의 탁류파 정권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세웠다. 그들의 뒤에는 강동의 호족들을 규합하여 수성에 능했던 손권(孫權), 즉 열석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청류파는 이번 정교유착 수사를 두고 특정 종교 단체를 표적으로 삼은 정치적 입막음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그들은 종교의 자유라는 방패를 앞세워, 국가가 종교 법인의 해산을 논하는 것은 반헌법적 처사라고 공격했다. 이는 마치 삼국지에서 손권이 조조의 대군에 맞서 강동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결사항전하던 모습과 흡사하다. 청류파는 지방의 보수 세력과 종교계의 여론을 결집하며, 조조의 법치 공세에 맞설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
단가행 : 이슬 같은 인생 속의 대업
깊어가는 용산의 밤, 조조는 홀로 집무실에서 자신의 단가행(短歌行)을 읊조린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으나, 지나간 날들에는 고난이 적지 않았구나. 그는 자신을 향한 간웅이라는 손가락질과 청류파의 비난 속에서도, 산은 높음을 마다하지 않고 바다는 깊음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주공(周公)의 고사를 가슴에 새겼다. 조조의 단가행(短歌行)은 후한 말기 중국의 정치가·시인 조조(曹操)가 지은 대표적인 악부시로, 인재 등용 정책과 영웅적 포부를 노래한 작품이다.
그에게 정교유착 척결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국가의 기강을 다시 세우는 신해양수도권 구상만큼이나 중요한 헌법적 결단이었다 . 그는 일본 문부과학성이 통일교 해산 명령을 청구한 사례를 거론하며, 법인격체라 할지라도 반사회적 행위를 한다면 마땅히 해산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
역사는 조조를 치세의 능신으로 기록할 것인가, 아니면 난세의 간웅으로 기록할 것인가. 연규이 수석을 통해 전달된 거침없이 정리하자는 주군의 결단은, 2025년의 끝자락에서 정치사를 새로 쓰는 실록의 첫 문장이 되었다. 조조가 위나라의 기틀을 닦았듯이, 조조의 정교유착 척결이 과연 새로운 시대의 통일된 법치 국가를 열어젖힐 수 있을지 천하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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