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국내 방산업계 안팎에서 다음 성장동력을 찾는 고민이 늘고 있다. 다름 아닌 수익을 오래 유지하는 방안을 찾는 고민이다. 최근 이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애프터마켓이다. 전차·자주포·항공기 수출이 확대되는 가운데 후속군수지원 역량이 국가 신뢰와 방산기업 수익성을 가르는 새로운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 무기값보다 비싼 ‘운용유지비’
24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무기값을 다 치르고 난 뒤에야 진짜 장사가 시작된다’는 말이 방산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통용돼 왔다. 무기체계를 구매하는 비용, 즉 획득비보다 정비·개량 등 운용하는 기간 들어가는 운용유지비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방산업체들이 흔히 인용하는 자료에 따르면, 획득비는 수명주기, 즉 도입부터 폐기까지 들어가는 총 비용의 약 30% 수준이고, 나머지 70%가 운용유지비로 쓰인다.
글로벌 시장분석 기관인 리서치 앤 마켓에 따르면, 군용 항공·방산 장비에 대한 ‘수명주기 관리(Lifecycle Management)’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110억달러(약 16조원)에서 연평균 7%대로 성장해 2030년에는 약 180억달러(약 26조2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30 대 70’ 공식은 장비 종류와 운용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는 평균값에 가깝다. 그럼에도 주요 무기체계에서 운용유지비는 대체적으로 획득비를 크게 웃돈다. 특히 장비가 노후할수록 정비·부품 수급 비용이 더 가파르게 늘어난다는 점은 관련 보고서들의 공통된 사항이다.
◇ 폴란드 사례로 본 K방산 애프터마켓
이러한 흐름 가운데 K방산도 수출이 확대되면서 애프터마켓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폴란드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산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을 대량 도입하며 K방산의 최대 단일 수입국 중 하나로 떠올랐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폴란드 국방부와 한국 방산업체들이 체결한 FA-50 경공격기 48대 도입 계약은 훈련·군수·기술 지원 패키지를 포함해 약 4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 K2 전차 180대, K9 자주포 212문 공급을 위한 계약 역시 약 7조8000억원 수준으로, 폴란드-한국 간 첫 대규모 패키지 계약의 뼈대를 이뤘다.
특히 초기 계약부터 훈련·군수·기술지원 패키지가 함께 묶인 것은, 폴란드가 단순 구매가 아니라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수명주기 지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폴란드 국방부는 계약 발표 당시 “항공기 구매뿐 아니라 훈련·군수·시뮬레이터 패키지가 포함되며, 폴란드 내 서비스센터 건설도 협의 중”이라고 밝히면서 현지 정비 기반 확보를 강조했다.
국내 방산업체들도 이에 맞춰 후속군수지원 체계를 구체화하고 있다. KAI는 지난해 6월 폴란드 국영 MRO 기업인 WZL-2와 FA-50 정비·수명주기 지원을 위한 협력 계약을 체결하고, 폴란드 내 FA-50 정비 허브 구축에 나섰다. 이 합의에 따라 KAI와 폴란드는 FA-50 운용 기간인 30~40년에 걸친 안정적인 정비·부품공급·기술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성과기반군수지원(PBL)’ 계약 체결도 추진 중이다.
특히 성과기반군수지원은 무기를 도입한 기관이 목표 가동률을 지정하면, 공급업체가 그 목표를 달성한 정도에 따라 비용을 받는 방식이다. 운용 기관은 일정한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고, 업체는 운용되는 동안 지속적인 수익원을 확보하는 셈이다.
K9 자주포와 K2 전차 역시 폴란드 현지 생산 라인과 연계해 부품·정비·개량까지 단계적으로 현지화하는 모델이 계약에 포함됐다. 폴란드에 새로 건설되는 K9PL 생산공장은 내년 이후 현지 생산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유지·보수 거점 역할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며, K2PL 전차 공장 역시 유럽 내 정비·개량 허브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
◇ 글로벌 업체, 애프터마켓으로 수익 창출
미국·유럽의 주요 글로벌 방산업체들은 이미 애프터마켓을 ‘핵심 캐시카우’로 설계해 왔다. 항공·방산 원제작사(OEM)들은 초기 기체·함정·전차 판매 이후 수십 년간 수리 부속, 정기 점검, 구조·전자장비 개량,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을 묶어 안정적인 반복 매출을 확보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심지어 사업 수주를 위해 무기 가격을 크게 낮추는 사례도 있다.
맥킨지 등 글로벌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항공·방산 분야 원제작사들의 매출에서 애프터마켓이 차지하는 비중이 40~50%에 이르고, 이익률로만 보면 무기 판매보다 오히려 높은 경우가 많다. 특히 군용 항공기·방공체계처럼 기술 난도가 높고, 부품 공급망이 제한된 분야일수록 원제작사들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장기간 정비계약과 개량 패키지를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K방산, ‘판매 이후 모델’ 설계가 관건
국내 방산업체들도 애프터마켓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공격적으로 체계를 다듬는 중이다. 폴란드 FA-50·K2·K9 수출처럼 초기 계약부터 훈련·군수·정비·업그레이드를 묶은 패키지 구조를 채택하고, 현지 MRO 거점 구축과 성능기반군수지원(PBL) 도입을 확대하는 흐름이 대표적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성과관리 시행계획에서 T/FA-50 계열에 대해 정부 차원의 맞춤형 수출 지원과 함께 수출국과 연계한 후속군수지원 체계 강화 계획을 명시했다. 한화·현대로템·KAI·LIG넥스원 등 주요 업체들도 해외 서비스 법인·정비센터를 확충하고, 탄약·유도무기·레이더·통신장비 등 전 분야에서 소프트웨어 개량·예측정비 설루션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과제도 있다. 국내 방산업체들의 공시·사업 보고서에는 글로벌 방산업체들과 달리 애프터마켓 매출과 이익률이 별도 항목으로 분리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후속군수지원 사업의 규모와 성과를 정량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로 GE에어로스페이스는 연차보고서에서 전체 매출의 약 70%가 애프터마켓 서비스에서 발생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RTX 역시 실적 발표에서 상업·군수 애프터마켓 실적을 별도로 공개하고 있다
또한 현지화 요구가 강한 수출 사업의 경우, 정비와 성능개량의 현지 수행 비중이 커지면서 애프터마켓 수익 구조와 기술 주도권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K방산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애프터마켓을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핵심 사업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무기체계를 설계하는 단계부터 정비가 얼마나 쉬운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성능을 높일 수 있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수출 계약에서도 초기 납품 속도나 가격 경쟁력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30~40년 운용 기간 동안의 정비·업그레이드 서비스 모델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현지 정비 인력 양성과 정비 거점 구축 계획까지 묶어 제안할 수 있어야,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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