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권한 남용" vs "재정 부담"…부지매입·설계비 20억원 날릴 판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부산의 한 기초단체가 착공을 앞둔 사업 예산을 삭감한 구의회를 대상으로 구상권 청구를 예고했다.
조병길 부산 사상구청장은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예산승인권 남용으로 주민 혈세를 낭비한 사상구의회 의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지자체가 구의회 권한인 예산삭감을 이유로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조 청장은 "사상구에서 제출한 추경 예산안과 내년도 본예산에서 편성한 구립 치매 요양원 건립과 관련된 예산을 구의회에서 전액 삭감해 사업을 중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며 "이는 공유재산관리계획 승인과 국·시비 확보, 설계 공모 등 구에서 법적 절차를 준수해 추진해온 사업인데 의회에서 예산승인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 청장은 우선 설계 관련 비용 3억원을 청구하고 사업 무산으로 반납하게 될 국·시비 28억원에 대해서도 구민들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법정 검토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사상구는 조 청장 공약사항으로 모라동에 지상 2층 규모로 치매 환자 48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구립 치매 노인 요양시설 건립을 내년 말 준공을 목표로 추진해 왔다. 구립 요양원은 부산에서 최초며 전국에서는 두 번째다.
사상구의회는 총사업비가 늘었고 시설이 향후 구에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수도 있다며 올해 추경 예산안과 내년 본예산을 만장일치로 전액 삭감했다.
구의회가 예산을 삭감하면서 이미 사용된 3억원가량의 설계비용이 날아가게 됐다. 사상구는 이미 17억원을 부지 매입비용으로 사용했다.
조 청장은 "공사 발주를 위해 마지막 절차까지 마쳤는데 지금 와서 사업제동을 건다는 것은 의회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매몰 비용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전략으로밖에 볼 수 없고 지방의회에서 다시는 이와 같은 사례가 없도록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며 구상권 청구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구의회가 주민 요구를 무시하고 구립요양원을 반대하는 사립요양원 민원을 받아들인 것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사상구청장에 당선됐던 조 청장은 재개발 주택 매입 의혹으로 당에서 제명돼 무소속 신분이다.
사상구의회는 구상권 청구는 지방의회 존재 이유를 무시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무소속 이종구 사상구의회 의장은 "예산이 계속 증액돼 소수를 위해 너무 큰 돈이 들어간다고 판단해 의원들 만장일치로 여기서라도 멈춰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의회 권한인 예산안 심사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은 이미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구청장이 정치적 존재를 부각하려고 하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지역 정가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청과 지방의회가 힘겨루기를 펼치는 모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지역 정가 한 관계자는 "뒤늦게 사업에 제동을 건 의회도 의회 역할을 부정하고 법적 대응 하는 구청도 안타깝다"며 "겉으로는 둘 다 주민들을 생각한다고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갈등만 부각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andbroth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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