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23일 본회의에 상정되면서 국민의힘이 무제한토론을 선언했다. 전날 내란전담재판부법에 이어 이틀 연속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며 연말 국회는 2박3일째 여야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오후 12시19분 법안 상정과 동시에 연단에 올라 첫 토론자로 나섰다. 최 의원은 11시간48분 동안 법안의 위헌 소지와 표현의 자유 제약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범여권은 토론 시작 직후인 12시21분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안을 제출했다. 토론 개시 24시간 경과 후 재적 5분의 3 찬성으로 종료 가능한 국회법 규정에 따라, 24일 정오 이후 표결 절차가 시작될 전망이다. 이번 법안까지 처리되면 22일부터 이어진 필리버스터 공방도 일단락된다.
"언론·표현 자유 억압" 강력 반발하는 국민의힘
국민의힘은 이번 개정안을 '슈퍼 입틀막법'으로 규정하고 전면 저지에 나섰다.
최 의원은 필리버스터에서 "위헌소지가 분명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강행하려고 한다"며 "지금이라도 멈추고 헌법과 상식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민주당을 겨냥해 "22대 국회가 들어서자마자 민주당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며 "언론보도, 인터넷 허위정보,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막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이른바 '가짜뉴스 척결'을 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과 과징금 조항을 집중 공격했다. 최 의원은 "법의 이름으로, 제도의 이름으로 국민의 입을 막겠다는 것"이라며 "피해자 보호법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과 정부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 큰 문제는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과 과징금까지 결합돼 있다는 것"이라며 "최대 10억원의 과징금, 손해액의 몇 배에 이르는 징벌적 배상, 이 조항들이 실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최 의원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게 적용돼 왔다"며 "이 법은 국민을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권력을 보호하는 법이고,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법이 아니라 오히려 약화시키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누구를 위축시키고 있는 것인가. 그게 거대 권력자인가"라며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 탐사보도를 하는 기자,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시민, 유튜버와 1인 미디어, 평범한 국민들을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국민들은 이제 '이 말 해도 되나, 이 글 올려도 문제 되지 않나'라고 스스로 검열하게 될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전형적인 과정"이라고 우려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이 법은 여전히 법원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며 "법원조직법에 따라 법원이 재판부와 판사를 결정하던 시스템에 대해 외부에서 입법적으로 관여하는 최초 사례라 위헌성을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與 "허위정보 확산 차단...책임 강화 불가피"
민주당은 허위조작 정보 확산 방지와 유통 책임 강화를 위한 필수 입법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허위조작정보 근절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표현의 자유와 허위정보 규제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수정 작업을 진행해왔다"고 설명했다.
문금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의원총회 직후 "유통을 금지하는 허위정보 조건을 다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안을 마련해 23일 본회의에 올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단순 실수나 오보는 처벌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위헌 소지 최소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이 불법 정보와 허위·조작 정보를 명확히 규정하고, 온라인상 유통을 차단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언론사나 유튜버 등이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거짓 정보를 퍼뜨려 피해를 발생시킬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핵심 장치라는 입장이다.
언론·시민사회 "권력자 비판 위축...표현 자유 침해" 경고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언론계와 시민사회가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4단체는 "권력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를 '허위'로 규정해 고액 소송을 남발할 여지가 크다"며 "윤석열 정권 시절 자행됐던 언론 탄압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같은 이유로 법안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언론 노동자들은 국가 중심 규제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위험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21일 성명을 통해 "국회는 위헌적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즉각 폐기하라"며 "권력자에 대한 비리 의혹, 비판 등의 보도 등에 대해 권력자 자신은 정치적 부담을 전혀 지지 않고 검찰이나 경찰 수사 또는 제3자가 고발을 통해 이에 대한 입막음용으로 남용되어 온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하자는 취지를 몰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일에야 허위정보 유통 금지 조항 수정안을 발의하다고 나섰지만 이것만으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본질적인 위헌성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법안이 2010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한 '공익을 해할 목적의 허위 통신' 금지 규정과 구조·내용이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금지되는 표현 내용이 불명확하면 국민이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이는 표현의 자유 본질을 훼손하는 위축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참여연대는 "위헌적 요소가 더해진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도 처리된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의 언론보도를 포함, 표현물에 대해 온갖 소송전이 난무할 것"이라며 "이것이야말로 공론장의 위기다. 국회는 위헌적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것이 아니라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수차례 뒤집힌 법안...졸속 처리 논란
이번 법안은 처리 과정에서 여러 차례 내용이 바뀌며 논란을 키웠다.
과방위 통과 당시에는 허위정보이면서 타인의 인격권·재산권·공익 침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의도 또는 부당한 이득을 얻은 목적으로 생산·선별 등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유통이 금지됐다.
그러나 18일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의도 또는 부당한 이득을 얻은 목적으로 생산·선별' 조건이 삭제돼 단순 허위정보 유통도 금지하는 방향으로 변경됐다. 조작 정보도 유통 금지 대상으로 별도 명시됐다.
이후 언론단체를 중심으로 '개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위헌 논란이 확산되자,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과방위에서 정한 기존 조건을 되살려 위헌 소지를 없애고, 대신 법사위에서 구분한 허위정보·조작정보는 유지하는 방향으로 재수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허위'와 '조작' 등의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또한 과방위에서 삭제하기로 한 개인 사생활 관련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일부를 법사위 수정안이 유지하고, 친고죄 도입을 백지화하며, 반의사불벌죄를 유지한 점도 논란거리다.
개정안은 불법 정보와 허위·조작정보를 규정하고 정보통신망 내에서 이들 정보의 유통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특히 언론과 유튜버 등이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불법·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이 담겼다.
또 비방 목적에 따라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허위정보를 반복적으로 보도한 언론사에 최대 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포함됐다.
새해까지 이어질 필리버스터 전망
민주당은 이번 법안 처리 후에도 법 왜곡죄 신설과 법원조직법 개정 등의 처리를 예고하고 있어 여야 대치 정국은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이 "상정되는 모든 쟁점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만큼, 입법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22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상정으로 시작됐다. 당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직접 연단에 올라 24시간 동안 토론을 진행하며 제1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필리버스터에 나섰고, 필리버스터 역대 최장 기록도 경신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학영 민주당 부의장이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로 사회를 보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필리버스터 사회 거부 의사를 거듭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주 부의장은 23일 오후 SNS를 통해 "의장께서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지난 9일 우 의장이 "의제 관련된 이야기만 하라"고 지적한 것을 거론했다.
주 부의장은 "무제한 토론은 말 그대로 '토론'이다. 토론에서는 모든 발언이 의제 안에 포함된다. 이것이 저의 소신이다. 그리고 상식이다"며 우 의장을 향해 본인에게 사회를 요청하려면 이 점에 대해 명확히 동의해줄 것을 요구했다.
[폴리뉴스 박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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