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경쟁입찰’로 확정되면서 특수선 양강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본격적인 맞대결이 예고됐다. 기본설계 프리미엄을 보유한 HD현대와 경쟁 입찰을 이끈 한화오션의 우위가 쉽게 점쳐지지 않는 가운데, ‘보안 감점’ 문제가 핵심 변수이자 갈등의 씨앗으로 떠오른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최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KDDX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 방식을 지명경쟁입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방산업체로 지정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경쟁을 벌여 최종 선정된 곳이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모두 맡게 된다.
KDDX는 선체와 전투 체계를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 사업이다. 오는 2030년까지 6000톤(t)급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것이 목표다. 예상 사업비는 7조8000억원으로 개념설계와 기본설계,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개념설계는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기본설계는 HD현대가 맡아 완료했다.
李 “수의계약 반대”…‘경쟁 입찰’ 결정에 엇갈린 희비
KDDX 사업자 선정 방식은 2년가량 지연됐다. 통상 함정건조 사업에서는 납기 준수나 기술 연속성 유지 등을 위해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단계까지 수의계약으로 수주하는 것이 관행으로 여겨졌다. HD현대도 관행대로 수의계약을 주장했으나, 한화오션의 문제 제기로 제동이 걸렸다.
한화오션이 경쟁입찰 필요성을 제기한 근거는 HD현대 임직원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임직원 9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양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방사청의 결정도 미뤄졌다. 초기에는 수의계약 방식을 우선 검토했지만, 국가 안보와 밀접한 대규모 방산 사업에서 군사기밀을 유출한 전력이 있는 기업에 추가 수의계약을 주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상황이 급변한 건 이달 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군사 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곳에 수의계약을 주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던데, 그런 것을 잘 살펴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면서 경쟁입찰 방식에 무게가 실렸다.
경쟁입찰을 택한 방추위의 결정을 두고 HD현대와 한화오션의 반응은 엇갈렸다. HD현대 관계자는 “방추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그간 지켜져 온 원칙과 규정이 흔들린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 향후 절차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한화오션 측은 “사업자 선정 방식이 이제라도 결정된 것은 다행스러운 결과”라며 “향후 KDDX 사업 수주를 통해 대한민국 해군력 증강에 기여하고 K-해양 방산을 이끌 수 있는 명품 함정을 건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HD현대 ‘설계 연속성’ vs 한화오션 ‘특수선 기술력’
방사청이 경쟁 방식을 확정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한화오션이 유리해 보이지만, 양사의 기회와 위험 요소를 고려하면 우위를 쉽게 가를 수 없다. HD현대가 보안 감점 부담을 짊어지고 있지만 기본설계를 수행하며 설계 연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HD현대는 기본설계를 수행하며 함정의 제원·성능, 탑재 무기 체계, 장비 배치, 체계 간 연동, 운용 개념 등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함정 자체의 복잡성이 높은 만큼 사업자가 변경되면 기본설계와 상세설계 간 기술적 연속성이 단절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도면을 그린 사람과 실제 작업을 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도면을 해석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고, 회사마다 기술의 적용 방식이 다르므로 사업자가 바뀌면 결국 시간이 더 필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오션은 기본설계를 수행하지 않아 향후 기술적 리스크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개념설계를 수행하며 초기 설계 방향에 깊이 관여했고, 이후에도 상세설계를 위해 기술을 연마했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해 볼 만 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장보고-Ⅲ 잠수함 사업을 비롯해 고난도 특수선과 잠수함 건조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력이 한화오션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했다는 점에서 큰 이점을 갖지만, 한화오션도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 관련 기술은 충분히 갖췄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양사 모두 ‘보안 감점’ 위험…갈등 씨앗 가능성
HD현대와 한화오션은 이번 계약에 사활을 걸고 있다. KDDX가 7조8000억원 규모의 사업일 뿐 아니라 향후 글로벌 군함 산업에서 유리한 위치를 획득할 분수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열된 경쟁 속에서 ‘보안 감점’ 문제가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있다.
보안 감점은 이번 수주전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방사청은 지난 9월 HD현대에 적용된 보안 감점을 1년 연장한다고 밝혔으나, 논란이 일자 확정된 사안은 아니라며 물러났다. HD현대의 보안 감점 적용 기간은 지난 11월 19일부로 만료된 상태지만 연장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한화오션 또한 부담이 적진 않다. 대우조선해양 시절 협력사 직원이 설계도면 유출 사건을 일으켰다. 해당 직원이 최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게 되자 한화오션의 보안 감점 가능성도 불거졌다.
이에 대해 HD현대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타회사 관련 사건에 언급할 부분은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방사청이 향후 입찰 과정에서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으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도 양사는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계기로 고소·고발전을 벌인 전력이 있다.
방사청은 특정 업체에 대해 보안 감점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군사 기밀을 빼돌린 곳을 잘 살피라”는 이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을 고려하면 관련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방사청 관계자는 “관련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평가는 관련 절차에 따라서 공정하고 신중하게 판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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