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의 얼굴은 이른 시기부터 화면 위에서 자라 왔다. 또래보다 이른 데뷔, 그보다 더 이른 성숙. 그래서일까. 작품이 쌓일수록 그는 조금씩 깊숙한 표정으로 우리 앞에 섰다. 2025년의 이재인은 그 변화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 지점에 서 있었다. 영화 〈하이파이브〉에서는 초능력을 이식받은 소녀로 분했고,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는 어린 유미지 역으로 1인 2역을 오가며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나눴다. 얼마 전 공개된 드라마 〈자백의 대가〉에서는 짧은 등장만으로도 시선을 붙들었고, 이제는 재난 드라마 <콘크리트 마켓> 공개를 앞두고 있다. 12월 중순, 새해와 새 작품을 앞두고 만난 이재인은 오랜 고민을 지나온 사람처럼 담담해 보였다. 지금의 이재인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아는, 그런 잔잔한 청춘처럼 보였다.
빅 버튼 디테일 테일러드 베스트와 스팽글 스커트 모두 Self-Portrait, 시스루 스타킹 YCH, 벨벳 플랫 로퍼 Maison Margiela.로즈 디테일 네크리스 Sinoon.
화보 촬영이 길어졌네요. 안 피곤해요? 에이, 전혀 문제없어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영화 촬영 현장은 여기보다 사람도 많고 에너지 소모도 크잖아요. 체력 관리가 중요하겠어요. 중요하죠. 근데 어릴 때부터 계속 그런 환경에 있다 보니 익숙해진 편이에요. 현장에서 자란 시간이 학교에서 보낸 시간보다 길거든요.
초등학교 2학년 때 tvN 드라마 <노란 복수초>로 데뷔했다고 들었어요. 유년 시절 기억의 대부분이 현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 근데 촬영장보다는 오디션 현장에서의 기억이 더 또렷해요. MBC에서 진행한 드라마 오디션인데, 자유롭게 보여달라고 해서 혼자 준비해서 춤도 추고 그랬어요.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름 호응을 얻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아역에서 청소년, 성인 배우로 넘어오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이 길을 잘 선택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저는 영화를 ‘엄청’ 좋아해서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크게 와닿고요. 시사회나 영화관에 갈 때 그 감각을 더 잘 느끼게 돼요. 큰 스크린에 제 얼굴이 나오는 것을 접하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하거든요. 사실 (작품을) 촬영하는 과정은 정말 지난하잖아요. 결과물은 ‘남의 것’처럼 보는 재미가 있어요.
스스로를 3인칭으로 보게 되잖아요. 어색하진 않아요? 왜 안 그러겠어요. 아마 평생 그럴 것 같아요. 모니터링하면 매번 ‘쟤 미쳤나 봐’ 이러거든요.(웃음) 근데 저는 되게 확실해요. 잘했으면 이건 ‘지금의 내게 최고 플레이야’라고 생각하고, 못했으면 ‘이럴 거면 그만둬라’라고 되뇌어요. 그렇게 객관화하는 과정이 성장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꾸준히 하면 는다는데, 저는 계단식으로 느껴요. 어떤 깨달음이 생길 때 확 성장하고, 또 그대로 가고요.
한 가지 꿈을 아주 오래 붙들고 있다는 건 굉장히 큰 에너지잖아요. 마음이 닳거나 지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솔직히 말하면, 이 길이 늘 확신으로만 채워져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제 안에 여러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죠. 다만 막상 다른 선택을 상상해보면 쉽게 손을 놓을 수 없겠더라고요. 현장은 저를 키워준 공간이기도 하고, 제 시간을 가장 오래 담고 있는 곳이니까요. 최근에는 출연한 작품이 연달아 공개되면서 오히려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어요.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크지만, 한편으로는 이 변화들을 어떻게 잘 받아들여야 할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애증이 있어도 결국 가족은 가족이듯이, 연기는 제가 계속 돌아오게 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불안함은 어디에서 오는 감정 같아요? 열정과 의욕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아직 더 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인 것 같아요. 지나온 길이 짧지 않지만 더 많은 걸 해보고 싶고, 더 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믿고 싶어서요.
플레어 커프스 터틀넥 Jorya, 미디스커트 Sacai, 실버 네크리스 Ottolinger, 옥스퍼드 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미워하고 냉소하는 건 너무 쉬운데, 용서하고 좋게 보려고 하는 건 정말 어렵잖아요.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그런 연기를 하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늘 100퍼센트 이상을 이끌어내고 싶은 거네요. 지칠 때마다 리프레시는 어떻게 하는 편이에요? 이따금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한번 봐요. 그러면 또 ‘저런 거 해보고 싶다’ 하면서 욕심이 생기거든요. 왜 내가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는지도 다시 생각하게 되고요. 정말 좋아하는 영화 속 대사가 있는데요. 영화 〈바빌론〉에서 극 중 영화평론가 엘리노어 세인트존(진 스마트 분)이 당대 유명 배우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분)에게 해주는 말이 있어요. “감사히 여겨. 오늘의 시간은 끝났지만 당신은 천사, 유령들과 함께 영원을 누릴 테니.” 저는 이 대사가 배우로서 가치를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마치 ‘당신의 전성기가 끝나고, 당신이 죽고, 출연한 영화가 잊혀도 아주 먼 미래에 누군가 그 영화를 다시 본다면 존재의 가치가 되살아날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들렸거든요.
영상과 이름으로 남아 미래 관객과 만난다는 의미군요. 맞아요. 저도 그런 가치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대중이 배우에게 그런 시간을 맡겨주고, 감독이 같은 마음으로 카메라를 움직여주는 게 느껴질 때. 이 일을 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런 걸 느끼죠.
2025년 12월 3일 영화 <콘크리트 마켓>을 선보인 데 이어, 23일에는 동명의 드라마(웨이브 오리지널)를 공개해요. 작품 대본을 읽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재밌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저는 세계관 설정이 강한 만화나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제가 맡은 ‘희로’의 성격도 강한 편이에요. 그 나이에 그렇게 행동하는 게 말이 안 되는 부분도 있고요. 근데 그래서 더 재밌었어요. 이걸 얼마나 설득력 있게, 현실 속 살아 있는 사람처럼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느꼈고요.
아무래도 영화 버전과 시리즈 버전의 차이도 분명히 있겠죠. 네. 영화에서는 주요 사건 위주로 가다 보니 보여주지 못한 서브 스토리가 많아요. 시리즈에서는 감정선도 더 자세히 나오고요. 음악도 다르고, 전개 흐름도 다르고. 두 버전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극 중 ‘태진’ 역을 맡은 홍경 배우와의 호흡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맞아요. 대본을 처음 봤을 때 계속 ‘태진을 어떤 배우가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어려운 캐릭터였거든요. 희로는 비교적 분명한데, 태진은 여러 면이 동시에 있어야 해서요. 근데 홍경 배우를 보고 바로 이해됐어요. ‘아, 이건 저 사람만 할 수 있겠다’ 싶었고요.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느꼈어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표정에서 나오는 공기가 있어요. 감독님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미지랄까. 태진이 가진 모순적인 면이 홍경 배우 안에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함께 합을 맞출 때 편했어요. 계산하지 않아도 태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거든요. 장르 특성상 세트장도 크고 긴장된 연출도 많았는데, 그런 환경에서도 텐션을 유지한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마음의 체력’이 강하다는 증거죠. 계속 집중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거니까.
벨티드 미디드레스 Self-Portrait, 골드 이어링 Dana Burton.
마음의 체력이라, 어떤 직업이든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 같네요. 재인 씨도 그 체력이 강한 편이에요? 아직은 노력하고 있어요. 아, 제가 마음을 채우고 싶을 때마다 보는 시가 있는데요. 지금 바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휴대폰으로 보여주며)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에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라는 문장이 있어요.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 말 같아서요. 잘 살아야 한다, 멋지게 살아야 한다는 말보다 그냥 살아 있으면 된다는 쪽에 더 마음이 가요. 부서져도, 형태가 달라져도, 어쨌든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잖아요.
‘나’로 살아가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는 태도처럼 들려요. 맞아요. 대단해지지 않아도 되고, 매번 잘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 기준에서는 꽤 단단한 태도인 것 같아요.
데뷔한 지 어느덧 13주년이에요. 다시 돌아보면, 그 시기에만 할 수 있었던 연기도 있을 것 같아요. 많아요. 영화 <사바하>는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올해 공개한 <하이파이브>, <콘크리트 마켓> 도 고등학생이었기에 가능한 눈빛이 있었고요. 그 때만 가질 수 있는 게 분명 있는 듯해요. 그걸 영상으로 남길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하죠.
그러고 보니 <사바하>에서의 1인 2역 연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어린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신비로운 캐릭터를 잘 소화했죠. 감사합니다.(웃음) 지금 도 많은 분이 ‘작품 잘 만났다’는 말을 많이 해주세 요. 이전부터 오컬트 장르 자체를 좋아해서 더 감사 했어요. 〈사바하〉는 그저 오컬트가 아니라 기독교 랑 불교 메시지를 동시에 다루잖아요. 저희 가족도 기독교 집안인데,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볼 주제라고 생각했어요.
어린 나이부터 일을 시작했잖아요. 가족의 존재감도 꽤 컸을 것 같아요. 많이 컸죠. 부모님은 항상 ‘네가 좋아하는 거면 계속 해도 된다’는 쪽이었어요. (부모님이) 꼭 연기로 성공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었고요. 그래서 더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바라던 대로 살고 있나요? 아니라면 어떤 부분에서 그차이를 느끼나요? 그때는 지금처럼 먼 미래를 그릴 여유가 거의 없었어요. 데뷔한 이후로 3개월 이상 쉬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일곱 살 때 <뽀뽀뽀>로 시작해서 늘 다음 촬영, 그다음 일만 생각하면서 지냈어요. 그래서 ‘성인이 되면 뭘 하고 있을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도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성인이 되고 나서야 꿈이 생겼어요.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연기에 대해서도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요. 어릴 때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했던 것 같아요. 혼나도 ‘고치면 되지’하고 넘길 수 있었고 감정 소모도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많아지면서 마음도 훨씬 복잡해졌어요. 그만큼 이 일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된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니트 톱 Sacai, 데님 스커트 Isabel Marant, 스타킹 Shop Cider, 크로스 모티브 네크리스와 레더 브레이슬릿, 링 모두 Chrome Hearts, 퍼 벨트 Dries Van Noten.
그래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한결 편안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확실히 긴장감은 줄었어요. 어릴 때부터 계속 현장에 있다 보니 스스로도 늘 어린애라는 인식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도 동료라기보다는 그냥 ‘현장에 와 있는 아이’처럼 느끼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들 안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감각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성인이 되니 주변에서 제 의견을 묻기 시작했어요. 그때 ‘아, 이제 진짜 이 팀의 일원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임감도 강해졌죠.
성인이 됐다고 해서 모두가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들어가는 건 아닐 거예요. 재인 씨가 그만큼 진심을 보인 거겠죠. 그건 맞아요. 결국은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감독님을 비롯한 제작진도 모두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그 자리에 계신 분들이잖아요. 저도 (영화를) 워낙 좋아하니 현장에서 작품 얘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통하는 순간이 있어요. ‘알지?’ 하면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렇게 교집합을 이루는 순간요. 그런 공감이 쌓이면서 조금씩 동료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연출에 대한 꿈이 있다고 했잖아요. 연출까지 욕심이 나는 이유는 뭘까요. 카메라에 담기는 게 좋다는 감정에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찍혔을까’, ‘이 선택이 이 이야기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현장에서 카메라, 조명, 렌즈에 대해 궁금한 걸 많이 물어보면서 하나씩 배우다 보니, 연출이라는 게 지시만 하는 역할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하는 일이라는 게 느껴졌고요. 그래서 이 세계를 다른 위치에서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요? 시놉시스를 쓰고 있거나. 작년 이맘때 단편 연출 워크숍을 했어요. 직접 단편을 하나 만들었고요. 그때 많이 느꼈어요. ‘감독님들, 정말 고생이 많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직접 해보니 연출이라는 자리가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어요.
연기에서 연출로, 새로운 지점을 확장했다는 점이 대단하네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영화제 출품을 준비 중이에요. 영화제 프리미어 규정이 있어서 아직은 공개할 수는 없고요. 결과를 기다리는 단계예요. 영화를 워낙 좋아하니 독립 영화도 자연스럽게 많이 보게 됐고, 직접 연출해보니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대단해지지 않아도 되고, 매번 잘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 기준에서는 꽤 단단한 태도인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촬영장 밖 일상도 궁금한데요. 연기만큼 아끼고 애정하는 것이 있나요? 게임도 좋아하고, 음악도 다양하게 들어요. 한번 꽂히면 깊고 다양하게 접하는 편이거든요.
어떤 게임을 좋아해요? 리그 오브 레전드(LOL)도 좋아하고, 이것저것 해요. 인디 게임도 좋아하는데, 스토리가 좋은 작품이 정말 많아요.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게임 제작에서 쓰는 용어들이 ‘신’, ‘시퀀스’처럼 영화랑 닮았거든요. 저는 게임도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관객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다는 점에서 영화보다 한 단계 더 확장된 표현 같아서요.
그런 감각은 음악을 들을 때도 비슷해요? 평소에는 어떤 음악을 많이 듣나요? 조금 달라요. 음악은 향수에 가까운 것 같아요. 유년 시절 촬영장에 갈 때마다 어머니가 차로 데려다주셨는데, 그때 차 안에 항상 음악이 흘렀거든요. 아바(ABBA)나 보니 엠, 이문세 선배님 노래 같은 것들이요. 그 시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음악이 지금의 취향을 만든 출발점이 된 것 같아요. 지금도 그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공기나 감정이 떠오르곤 해요.
지금의 취향도 그 기억 위에 있는 느낌이네요. 인상적이었던 공연도 있나요? 네. 팝, 밴드 음악도 좋아하는데, 약 3년 전 이지 라이프 내한 공연을 봤어요. 아, 원래 이름은 ‘이지 라이프’가 맞는데, 최근에 ‘하드 라이프’로 개명했어요. 보험 회사에서 상표권 문제를 제기해서 바꿨다네요.(웃음)
그 사연까지 알고 있는 걸 보니 정말 좋아하나 봐요. 그럼요. 좋아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편이에요. 음악도 그렇고, 게임도 그렇고. 그냥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왜 이런 걸 만들었는지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죠.
그런 집념이 지금의 이재인을 만든 것 같아요. 이제 질문이 얼마 안 남았어요. 내년 스물두 살을 앞둔 이 시점,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미워하고 냉소하는 건 너무 쉬운데, 용서하고 좋게 보려고 하는 건 정말 어렵잖아요.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그런 연기를 하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작품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는 건 괜찮아요? 어쩌겠어요. 슬프지만 그렇게 생각하라고 해야죠. 덜 미움받으려고 노력은 해야겠지만요. 그래도 가끔은 물을 것 같아요. ‘날 왜 미워하지?’(웃음)
이제 곧 크리스마스예요. 취향 좋은 재인 씨에게 영화를 추천받고 싶은데,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예요? 〈사랑은 비를 타고〉요. 어릴 때부터 자주 본 영화예요. 앞서 이야기한 〈바빌론〉에서도 극 중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이 이 영화를 보죠. 저는 영화만이 다룰 수 있는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정말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면 ‘영화 같다’고 말하지만, 실제 인생은 영화처럼 극적인 순간이 많지는 않잖아요. 진 켈리가 빗속에서 웃으며 춤추는 그 장면이 제게는 궁극적인 행복처럼 느껴졌어요. 비를 피하는 게 아니라 비를 맞으면서도 웃을 수 있는 상태. 그게 삶의 목표라면, 그 장면이 딱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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