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 내부거래 보고서』를 연재합니다. 대기업집단 하림그룹이 얼마나 투명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발단은 하림그룹 에코캐피탈이라는 여신업체에서 보낸 정정보도(기사 삭제) 요청입니다. 본지는 23일 「하림그룹 부실 계열사도 '김준영 CP' 사주기 동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여기서 CP는 기업어음을 뜻합니다. 기사 알맹이는 재무 여건이 괜찮은 하림그룹 계열사뿐 아니라 자본잠식돼 있는 곳조차도 총수 2세가 100% 지배력을 가진 캐피털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지는 총수 일가가 모든 지분을 가진 '가족기업' 가운데 하림그룹처럼 계열사에 CP를 돌리는 곳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국내 92개 대기업집단을 대상으로 3년치 내부거래를 모두 보았지만 단 1곳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총수 일가가 아닌 주주가 있는 경우에는 계열사끼리 CP를 돌린 사례가 있었습니다. 규모는 전체 대기업집단 가운데 8%도 안 되는 7곳입니다. 이 7곳은 3년 동안 52차례에 걸쳐 계열사끼리 CP를 돌렸고, 이 가운데 하림그룹 1곳만 80%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계열사 간 CP 돌리기를 나쁘게 보는 이유로는 동반부실 위험이 가장 먼저 꼽힙니다. 총수 일가까지 끼어 있다면 사익편취 논란도 생길 수 있습니다. 주무당국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입니다. 본지는 당국을 상대로 한 정보공개 청구와 유권해석 요청 결과로 연재를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주]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님, 공정거래법에서는 동일인이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너십이나 지배력이 그룹 전체에 미친다고 보아서겠죠. 에코캐피탈은 기사 정정을 요청하면서 '김준영 CP'를 지적했습니다. 회장님 맏아들인 김준영 상무가 CP를 발행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죠. 인정합니다. '김준영 소유사 CP'로 바꾸겠습니다. 애초 계열사끼리 CP를 돌리는 행위로 거두는 과실이 끝내 누구에게 가는지에 주목했기에 '김준영 CP'로 줄여 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에코캐피탈은 감사보고서로 확인할 수 있는 2014년부터 작년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204억원을 배당했습니다(2017·2023년 미배당). 배당금을 받은 곳은 100% 지분을 보유한 올품입니다. 김준영 상무는 올품 주식을 100% 가지고 있죠.
에코캐피탈은 부실 계열사까지 앞세워 CP를 사준다는 것도 터무니없다고 했습니다. 이건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CP를 매수한 에버미라클은 2024년 말 현재 자본잠식돼 있는 결손법인이니까요. 에코캐피탈은 계열사를 앞세운 적 없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정할 수 없어요. '지배회사 지침' 없이 계열사 어느 1곳이라도 많게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회사 자금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되레 그렇다면 회장님 지배력이 속속들이 미치지 않고 있다고 보아야겠죠.
에코캐피탈은 CP로 계열사 자금운용에도 기여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국내와 해외에 더 나은 투자처나 금융상품이 없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요. CP를 매수한 계열사 가운데는 상장법인도 있습니다. 회삿돈으로 수익률 4% 중반인 CP를 사기보다는 이익을 두 자릿수로 늘려주기를 바라는 개미 투자자도 있을 겁니다.
에코캐피탈은 앞으로도 계열사에 CP를 팔까요. 다른 대기업집단에서는 이런 사례를 보기 어려운데도 말입니다. 3년치 대기업집단 내부거래를 보면 하림그룹을 빼면 농심그룹이 10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BS와 LS, MDM, 태영, 쿠팡그룹은 제각각 1~4건을 기록했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정정보도 요청 내용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에코캐피탈은 회사 직인이나 문서번호 없이 본지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의아할 수밖에요. 재계 순위 30위인 대기업집단 계열사에서 문서통제를 받은 흔적이 없는 공문을 보낼 리 없잖아요. 하림그룹이라면 계열사 모두에 적용하는 지침이 있을 터니까요. 아무나 회사 이름으로 공문을 만들면 큰일이잖아요. 이번만 실수한 것이겠죠. 그래서 '진짜 공문'도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조준영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Copyright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