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와 환율 변동성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연말 소비자들의 경제 심리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물가 부담이 일상 전반으로 확산되고, 대외 여건에 대한 불안이 커지자 현재 경기 인식과 향후 전망이 동시에 악화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9.9로 전월(112.4) 대비 2.5포인트 하락했다. 지수 자체는 여전히 기준선인 100을 웃돌고 있지만, 하락 폭만 놓고 보면 지난해 말 이후 1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한 달 전 반등 흐름을 보였던 소비 심리가 다시 급제동이 걸린 셈이다.
소비자심리지수는 현재생활형편, 생활형편전망, 가계수입전망, 소비지출전망, 현재경기판단, 향후경기전망 등 6개 세부 지수를 종합해 산출된다. 이번 조사에서는 소비지출전망을 제외한 대부분 항목이 일제히 하락하며 전반적인 체감 경기 악화를 드러냈다.
특히 현재경기판단 지수는 89로 한 달 새 7포인트 떨어져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경기 상황이 단기간에 급격히 나빠졌다는 의미로, 장기 평균과 비교해도 상당히 비관적인 수준이다. 향후경기전망 역시 96으로 6포인트 하락하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빠르게 약화됐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으로는 생활물가 상승 압력이 가장 먼저 지목된다.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식료품과 교통비, 에너지 비용 등 필수 지출 부담이 커졌고, 이는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를 직접적으로 자극했다. 실제로 장바구니 물가와 밀접한 품목 가격 상승은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광범위한 심리 위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환율 불안도 소비 심리를 짓누르는 요인이다. 최근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수입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졌고, 이는 향후 물가 전망과 경기 안정성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과 산업 구조 변화에 대한 불안감이 겹치며 소비자들의 중장기 경기 인식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가계수입전망 지수는 103으로 1포인트 하락했고, 생활형편전망과 현재생활형편 역시 각각 1포인트씩 떨어졌다. 이는 당장 소득이 급감하지는 않더라도 앞으로의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지출전망 지수는 110으로 전월과 같았지만, 이는 필수 지출 위주의 소비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만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21로 전월 대비 2포인트 상승하며 엇갈린 신호를 보냈다. 최근 한 달간 주택 관련 정책 환경이 다소 안정되면서 1년 뒤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소비자 비중이 다시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향후 1년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6%로 전월과 동일했다.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인식은 유지됐지만, 추가적인 급등을 예상하는 응답은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물가 부담이 이미 상당 부분 체감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확실성 자체가 심리 위축을 키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번 소비심리 지표 하락이 단순한 일시적 조정이 아니라 고물가와 환율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실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호로 보고 있다. 특히 경기 판단과 전망이 동시에 악화됐다는 점에서 연초 경제 흐름에 대한 경계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말을 맞아 소비 심리가 다시 움츠러들면서 내수 회복의 동력 역시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가 안정과 환율 변동성 완화, 가계 체감 경기를 개선할 수 있는 정책적 대응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