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제주도는 필자가 오랫동안 한 달 살기, 올레길 트래킹, 서핑 등 다양한 활동을 해본 친숙한 섬이다. 섬에서 살아보기 전까지는 섬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제주에서 지낸 시간 동안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날씨였다.
제주의 하늘은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었다. 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해발 1천947m)을 중심으로 바람이 산을 타고 오르내리며 순식간에 구름을 만들고, 비와 눈을 뿌렸다. 맑은 날을 골라 나선다고 해도 늘 한발 늦은 느낌이었다.
카메라로 담는 풍경도, 눈으로 마주하는 장면도 언제나 조금 모자란 듯 아쉬움이 남았고, 목적지에 도착해 서 있어도 이상하게 목마른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섬 곳곳을 아이스크림을 아껴 먹듯, 그러나 빠짐없이 둘러보았다. 사계절 내내 보물찾기와 술래잡기를 동시에 하는 기분이었다. 날마다 영화를 보거나 TV를 켜는 대신, 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제주 풍경을 보는 일이 더 좋았다.
제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경도 많지만, 이름난 명소는 대개 그 명성에 걸맞은 풍경을 품고 있다. 그래서 결국 명소가 됐을 것이다.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는 제주를 대표하는 종합 휴양지다. 여미지 식물원과 여러 고급 호텔, 박물관이 밀집해 있고, 그 중심에는 중문 해수욕장이 자리한다.
깎아지른 해안 절벽 아래 자리한 해수욕장은 흔치 않은 지형이다.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능선에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나 있고, 해수욕장 입구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진입로는 한 번 90도 방향을 꺾어야 한다. 그 코너를 도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무엇보다 중문 해수욕장은 파도로도 유명하다. 남쪽에서 너울(swell)이 강하게 들어오는 여름철이면, 국내에서 손꼽히게 질 좋은 파도가 자주 형성되는 곳이 바로 이 일대다. 중문 주변에는 파도가 부서지는 여러 지점(포인트)이 있는데, 그 가운데 '중문 듀크 포인트'로 불리는 곳은 국내 서퍼들 사이에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이 지점은 해변 동쪽 끝, 중문해수욕장 인근 '제주해녀의집' 앞 바다에 형성된 파도 포인트로, '포인트 브레이크'(point break) 특성을 가지고 있다.
포인트 브레이크란 모래사장처럼 바닥 지형이 자주 변하는 곳에서 파도가 부서지는 비치 브레이크와 달리, 암반이나 산호처럼 단단한 바닥 지형을 기준으로 파도가 부서지는 구간을 가리킨다. 바닥 지형이 고정돼 있기 때문에 파도가 생기는 위치와 방향, 모양이 비교적 일정하게 반복된다.
중문 듀크 포인트는 바닥이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정한 방향의 파도가 생기며, 적당한 수심과 지형 덕분에 긴 주행이 가능한, 국내에서도 드문 포인트 브레이크로 평가된다.
제주에 있는 포인트인데, 왜 이름이 '듀크'(Duke)일까.
등반과 서핑 같은 극한 스포츠에서는 새로운 루트나 파도 포인트를 개척한 사람의 이름, 혹은 그 사람이 붙인 이름이 그대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중문 듀크 포인트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서퍼 이창남이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 서핑 문화가 막 확산하기 시작하던 시기에는 인터넷 카페가 주요 소통 창구였다. 다음 카페 '서프코리아', '서퍼스 파라다이스' 같은 커뮤니티에는 전국의 서퍼가 모여 정보를 나누고, 함께 서핑하러 다니곤 했다.
이 카페에서는 원칙적으로 실명과 닉네임을 병기했는데, 그중 한 계정이 '듀크 / 이창남(1952-)'이었다. 그는 한국에 서핑을 처음으로 본격 전파한 인물로, 일본 서핑 1세대이자 1970년대 치바 지역 대회 챔피언으로 활동했던 프로 서퍼 경력을 가진 재일동포다.
그의 부모는 일제강점기와 전후의 어려운 생활로 인해 고향이던 제주 한경면 고산리·신창리를 떠나 일본으로 이주했다. 이창남은 일본에서 성장하며 서핑에 빠져들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뿌리를 찾아 제주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해안을 둘러보는 여정을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그는 여러 차례 한국을 찾으며 각지의 파도를 관찰했고, 1996년 여름에는 부모의 고향인 제주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서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많은 서퍼가 이 시기를 한국 서핑의 시작점 가운데 하나로 기억한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던 서핑 문화의 상징, 듀크 카하나모코의 정신을 기리고자 닉네임을 '듀크'로 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듀크 카하나모코는 누구인가. 듀크 파오아 카하나모코(1890~1968)는 하와이 출신의 수영 선수이자 서핑 전도사로, '현대 서핑의 아버지'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자유형 100m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여러 차례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수영 영웅이었고, 와이키키 해변에서 자라며 전통 하와이식 서핑을 즐겼다.
듀크는 미국 본토와 호주, 유럽 등지에서 시범을 통해 서핑을 소개하며 이 스포츠와 하와이의 '알로하'(Aloha) 정신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알로하'는 인사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나누고, 타인을 환대하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파도를 타는 즐거움, 바다와 함께하는 삶을 혼자 소유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 나누며 문화를 키워가는 정신이다. 우리 문화의 '정'(情)과 정서적으로 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
바다의 파도는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공평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파도를 타는 행위는 파도를 향해 직선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부서지는 파도의 경사면을 옆으로 미끄러지듯 타는 동작이다. 그래서 한 줄기 파도 위에는 기본적으로 한 사람만이 제대로 탈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타려 하면 서로 방해를 받기 쉽다.
결국 누가 먼저 파도를 잡을 것인지, 누가 양보할 것인지에 대한 암묵적 규칙과 문화가 중요해진다. 잘 타는 사람이 기회를 독점하면 새로운 사람은 파도에 설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하와이 왕국이 존재하던 시기에는 서핑에도 신분 질서가 반영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왕과 귀족은 가장 크고 긴 보드를 사용했고, 서열에 따라 점점 작은 보드를 탔다. 물 위에서는 크고 부력이 좋은 보드일수록 더 쉽게, 더 빨리 파도를 잡을 수 있다.
육지의 권력이 파도 위 권력으로도 이어졌던 셈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경기처럼, 오랫동안 많은 스포츠는 모두를 위한 활동이 아니라 선택받은 이들의 특권이었다.
듀크 카하나모코는 이러한 문화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와이키키 해변에서 서핑과 카누를 가르치는 '와이키키 비치 보이스'(Waikiki Beach Boys)의 중심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서핑을 대중에게 알리고 누구나 바다를 즐길 수 있도록 평생 힘썼다.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하고, 하와이의 친선대사이자 명예직 경찰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하와이 문화와 서핑을 알렸다.
그는 수영 명예의 전당과 서핑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정된 최초의 인물이 됐고, 지금도 와이키키 해변 중앙에는 그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많은 이들이 그 앞에서 레이를 걸며 사진을 찍고,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이창남이 제주에서 보여준 행보 역시 이와 닮았다. 그는 중문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서핑 보급과 인명 구조 봉사에 힘썼다. 중문 해수욕장은 수심 변화와 해저 지형, 너울성 파도와 강한 이안류(바닷물이 빠져나가는 흐름) 때문에 예전부터 해수욕객 사고가 잦은 위험 해안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창남과 동료들은 서프보드를 활용한 인명 구조 방식을 도입했다. 부력이 좋은 보드는 위급 상황에서 조난자를 빠르게 지지하고, 구조 요원이 파도와 조류를 이용해 이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방식은 실제로 높은 효과를 거두었고, 이후 해경과 안전요원들도 보디보드·서프보드를 구조 장비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1997년 무렵이 되자 서핑의 유익성과 안전성이 서귀포 색달동 지역 주민, 경찰, 해경, 소방대에까지 공유되면서, 중문 해수욕장은 '위험해서 접근하기 꺼려지는 해변'에서 안전 관리가 잘 이루어지는 서핑 '명소'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서핑을 통한 인명 구조 경험은 지역 사회가 서핑 문화를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내 기억 속에서 제주에서 파도를 타는 시간에는 늘 따뜻한 환대가 함께했다. 내가 바다 사진과 서핑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서였을 수도 있지만, 중문에서 만난 여러 사람의 태도에는 '듀크'라는 이름에 담긴 정신이 어딘가 스며 있는 듯했다.
서핑을 처음 배우러 온 이에게 먼저 파도를 양보해주는 선배들, 위험한 날이면 괜찮냐고 먼저 묻는 동네 사람들, 장비를 같이 나눠 쓰는 동료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제주 중문 해수욕장은 내게 친구를 가장 많이 사귄 곳이자 '듀크 포인트'라는 이름이 하나의 마음가짐을 상징하는 장소가 됐다.
제주도 서귀포 중문 해수욕장 동쪽 끝, 제주해녀의집 앞에 펼쳐진 파도 포인트. 이곳이 바로 '듀크 포인트'다. 이름 그대로,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나누며 다음 세대에게 건네준 곳. 파도 위에서 이어지는 그 마음이, 바다와 섬, 사람을 조용히 이어주고 있다.
김정욱 (크루 및 작가 활동명 : KIMWOLF)
▲ 보스턴 마라톤 등 다수 마라톤 대회 완주한 '서브-3' 마라토너, 100㎞ 트레일 러너. ▲ 서핑 및 요트. 프리다이빙 등 액티비티 전문 사진·영상 제작자. ▲ 내셔널 지오그래픽·드라이브 기아·한겨레21·주간조선·행복의 가득한 집 등 잡지의 '아웃도어·러닝' 분야 자유기고가.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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