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취업 시장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기업 정규직 채용 시장이 유례없는 한파를 맞이했다. 단순히 경기가 좋지 않아 주춤하는 수준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가 ‘신입 비선호’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는 지표가 나왔다.
채용 플랫폼 캐치가 2024년과 2025년(1~11월 기준)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대기업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를 전수 분석한 결과, 올해 공고 수는 2,145건에 그쳤다. 지난해 3,741건과 비교하면 무려 43%나 급감한 수치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체감 경기가 바닥"이라는 말이 돌았던 이유가 데이터로 증명된 셈이다.
주목할 점은 고용의 질이다. 인턴과 계약직을 모두 포함한 전체 신입 채용 공고는 34% 감소했지만, 정규직만 떼어놓고 보면 감소 폭이 43%로 훨씬 가파르다. 기업들이 당장 급한 일손은 비정규직이나 인턴으로 충당하면서도, 장기적인 비용 부담이 큰 정규직 신입 채용에는 극도로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AI(인공지능) 확산'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신입 사원들이 도맡았던 기초 업무나 단순 사무를 AI가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이 굳이 '가르쳐서 써야 하는' 신입을 대규모로 뽑을 유인이 사라진 것이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디지털 전환의 최전선에 있는 'IT·통신' 업종의 정규직 신입 공고는 지난해 899건에서 올해 293건으로 67%나 줄어들었다. 공고 3개 중 2개가 사라진 격이다. AI 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업종인 만큼, 신규 채용 대신 기존 인력을 재교육(Reskilling)하거나 적재적소에 재배치하는 전략이 가장 먼저 고착화된 결과로 풀이된다.
전통적인 효자 업종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건설·토목 분야는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53% 감소하며 반토막이 났고, 판매·유통(-44%)과 서비스(-38%) 역시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제조·생산(-33%)과 은행·금융(-31%) 부문도 30%가 넘는 감소율을 보이며 채용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대규모 공채로 상·하반기를 수놓던 시절이 저물고, 꼭 필요한 인원만 뽑는 ‘핀셋 채용’이 대세가 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채용 감소를 단순한 경기 불황의 산물로 보지 않는다. 진학사 캐치 김정현 본부장은 "이번 정규직 채용 감소는 단기적 위축을 넘어 기업들이 대규모 공채 시스템에서 기존 인력 유지 및 효율화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결국 다가올 2026년이 한국 고용 시장의 향방을 가를 중대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기업들이 효율화를 마치고 다시 공격적인 인재 확보에 나설지, 아니면 현재의 '저(低) 채용 구조'가 새로운 표준(New Normal)으로 자리 잡을지에 대해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취업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에서 구직자들의 전략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단순히 스펙을 쌓는 수준을 넘어, AI를 도구로 활용해 즉시 전력감임을 증명해야 하는 가혹한 숙제가 청년들에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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