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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항구도시 마리우폴 출신인 빅토리아(35)는 최근 4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5일 점령지에서 피난을 떠난 우크라이나인 소유 주택에 대해 몰수를 허용하는 법안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가족은 이미 마리우폴을 떠났고 과거 함께 살던 아파트도 텅빈 상태였지만, 빅토리아는 아파트를 등기해 소유권을 공식 확인받기 위해 귀향을 결심했다. 다행히도 그는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 러시아 비자를 발급받아 마리우폴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또 마리우폴에 남아 있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등기도 마칠 수 있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을 집중 공격해 약 두 달 반의 격전 끝에 완전 장악했다. 빅토리아는 “러시아 혁명 직후인 1917년으로 시간 여행을 한 듯했다”며 황폐해진 도시 모습에 말을 잃었다고 전했다. 이어 “마리우폴 시내 곳곳에는 건물이 폐허 상태로 방치돼 있었고, 옛 소련의 상징인 ‘낫과 망치’ 문장이 넘쳐났다”고 덧붙였다.
평화협상 교착이 지속되는 가운데 점령지에 대한 ‘러시아화’를 가속해 합병을 기정사실화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러시아는 2022년 9월 동부 돈바스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주)과 남부 자포리자·헤르손주 4곳에 대해 주민투표를 내세워 일방적 합병을 선언했다.
이후 점령지에 ‘행정부’와 ‘의회’를 설치하고 러시아의 법체계와 세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왔다. 현지 주민들의 러시아 여권 취득도 의무화했다. 2026년 1월 발효될 ‘국가민족전략’에는 러시아어 지위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 역사적 건축물과 기념비는 파괴·철거하는 등 역사 왜곡 시도도 병행되고 있다.
마리우폴 출신 오르가(35)는 “처음엔 러시아 여권으로 바꾸는 데 갈등이 있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현실에 적응해야 했다. 점령지에 남은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인’이 되도록 강요받고 있다. 내 딸은 우크라이나어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빅토리아도 “하루하루 생계에 쫓기는 주민이 대부분이어서 우크라이나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어쩔 수 없이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마리우폴에선 점령지 내 주택·도로·학교 등 인프라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침공 초기 폭격으로 수많은 시민이 숨진 마리우폴 극장도 재건됐다. 오르가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 지원으로 가처분 소득은 오히려 늘었고, 공공요금은 낮게 유지되고 있다. 딸의 아동수당과 부모의 연금도 지급되고 있다.
그러나 도시 재건은 더디고, 주택 부족과 인프라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러시아의 점령 과정에서 집합주택(아파트)의 90%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40만명이 넘던 주민 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정전·단수도 빈번하며 피난민들이 돌아오지 않아 상업시설은 텅 비어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푸틴 대통령의 법안 서명 이후 마리우폴을 비롯한 러시아 점령지에서는 아파트 등 부동산 몰수가 더욱 빨라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다수 지역 피난민들의 처지는 빅토리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은 지난 16일 올해 11월 기준 3만 8000채가 넘는 주택에서 우크라이나인의 소유권을 입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일방적인 자산 몰수는 국제인도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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