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화폐 전쟁, 결제 주권을 둘러싼 새로운 패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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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 전쟁, 결제 주권을 둘러싼 새로운 패권 경쟁

뉴스비전미디어 2025-12-23 23:40: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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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화폐를 둘러싼 디지털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 다가올 국면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결제 시스템을 장악하기 위한 글로벌 경제 세력 간의 본격적인 전쟁이다. 이 전쟁에는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국가 주권 상실에 대한 우려가 깊게 얽혀 있다.

유럽중앙은행과 전통 금융권, 그리고 미국의 기술 대기업들이 서로 다른 비전을 내세우며 미래 화폐 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화폐가 거의 완전히 디지털화되는 시대에, 누가 그 통제권을 쥐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화폐 논쟁의 실질적인 출발점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페이스북은 자체 디지털 화폐 ‘리브라(Libra)’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분석가 안토니오 카스텔로는 이를 두고 “수십억 명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전례 없는 글로벌 민간 화폐 구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유럽 당국은 곧바로 통화 주권 침해, 금융 시스템 불안정, 외부 세력에 의한 통제 가능성이라는 위험을 감지했다. 결과는 강력한 규제 압박이었고, 리브라 프로젝트는 결국 좌초됐다. 이 사건은 ‘대규모 민간 화폐’라는 개념을 현실로 끌어냈지만, 동시에 강력한 규제의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했다.

하지만 기술 대기업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결제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외부 의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제 공세의 중심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서 있다. 한 회의에서 ECB 수석 경제학자 필립 라이언은 유럽이 결제 분야에서 외국 공급업체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유로존 카드 결제의 약 65%는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가 처리하고 있으며, 여기에 애플페이, 구글페이, 페이팔과 같은 미국 기술 기업들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라이언은 이러한 구조가 유럽을 외부 압력과 강압의 위험에 노출시킨다고 지적하며 “화폐는 너무 중요해서 외부의 손에 맡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로 구체화되고 있다. 한때는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 구상은 새로운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급부상했다. 현재 계획에 따르면 2026년 관련 입법이 발표되고, 2027년 시범 사업을 거쳐 2029년 정식 도입이 목표다. 디지털 유로는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유럽이 결제 인프라를 전략적 주권의 영역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컨설팅 업계 역시 이러한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KPMG의 전략 파트너 알바로 카사도는 “결제는 더 이상 단순한 중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사업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새로운 결제 디자인과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고 있으며, 주요 세력들이 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미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중앙은행이 디지털 유로를 위해 새로운 기술 인프라 구축에 나선 것도 이러한 경쟁 구도의 한 축이다.

은행권 역시 가만히 있지 않다. 전통 금융기관들은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열었다. 하나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현실적인 즉시 결제 시스템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스페인에서 시작된 Bizum이다. Bizum은 무료 즉시 결제를 기반으로 각국의 결제 시스템을 통합해 유럽 전역의 상호 운용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아직 ECB가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영역이기도 하다.

유럽의 한 대형 금융기관 관계자는 “스페인의 Bizum과 같은 각국 결제 시스템의 상호 운용성은 외국 운영자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실질적인 주권 해법”이라며, “Bizum이야말로 유럽중앙은행이 고민하는 문제의 상당 부분을 이미 해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삼자 대결에서 미국 결제 사업자와 기술 기업들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는 기존 카드 결제 ‘궤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기술 대기업들은 결제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접점을 장악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과 모바일 지갑, 폐쇄형 플랫폼을 결합한 자체 결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화폐는 사용 범위가 제한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결국 승자는 누구일까. 유럽중앙은행이 공공 주도의 해법을 완성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카스텔로는 “단일한 승자가 등장하기보다는, 엄격히 규제된 공존 모델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이 경쟁의 전리품은 단순한 결제 수수료가 아니라,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과 사용자와의 관계다. 카사도 역시 “다양한 사용 시나리오 속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화폐가 공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디지털 화폐 전쟁의 결말은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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