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종의 클로즈업] 軍 정당한 명령과 위법한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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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종의 클로즈업] 軍 정당한 명령과 위법한 명령

경기일보 2025-12-23 19:21: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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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종 한국군사법학회장·호원대 명예교수

군은 명령과 복종을 통해 움직인다. 이는 권위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생명과 국가 안보가 걸린 조직이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논의되는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 특히 ‘정당한 명령’의 판단을 장병 개인의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군 지휘체계 전반에 근본적인 법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번 논쟁의 본질은 ‘명령 거부권을 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정당한 명령과 위법한 명령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 판단과 책임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라는 법적 설계의 문제다. 이 지점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제도만 앞서갈 경우 군은 새로운 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개정안은 장병의 권리 보호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취지 자체는 정당하다. 그러나 군사작전 환경에서는 명령의 즉시성과 일관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작전 수행이 불가능하다. 전장에서 개별 장병이 명령의 정당성을 사전에 판단해야 하는 구조가 일반화될 경우 지휘체계의 지연과 판단 혼선이 발생할 가능성은 현실적인 우려다.

 

특히 계엄 논란 이후 군 통제와 책임 문제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책임의 명확화보다 ‘명령 거부 가능성’이 강조되는 접근은 군 내부에 또 다른 불확실성을 낳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미 “이 명령이 나중에 문제 되지는 않을까”라는 고민이 명령 집행 이전에 앞서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휘관이 군사적 판단보다 사법적 해석 가능성을 먼저 고려하게 되면 지휘의 적극성과 책임성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국 논쟁은 ‘어떤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명령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그러나 현재의 법체계는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군은 위법 명령에 대해 사후적으로 책임을 묻는 구조—지휘 책임, 군검사·감찰제도—를 통해 통제해 왔다. 이 제도를 정교화하는 대신 판단 부담을 장병 개인에게 이전하는 방식은 책임의 하향 이동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해외 군대의 사례 역시 이 지점에서 신중하다. 미국 군형법(UCMJ)은 ‘적법한 명령’에 대한 복종 의무를 분명히 규정하면서도 위법성 판단은 제도와 사법 절차에 귀속시킨다. 독일 연방군 또한 법적 근거 없는 명령은 무효라는 원칙을 명확히 하되 그 판단 기준은 법률에 의해 구체화돼 있다. 공통점은 명확하다. 모호한 개념을 개인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의 민주적 통제는 헌법 질서의 핵심 요소다. 그러나 민주적 통제란 군 내부의 판단을 불확실하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책임 구조를 통해 군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다. 통제와 안정성은 대립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기준이 분명할수록 군은 더 민주적으로, 더 책임 있게 작동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당한 명령’이라는 추상적 문구의 확대가 아니다. 위법 명령의 구체적 유형, 판단 주체의 명확화, 전시·작전 상황에서의 예외 규정, 그리고 사후 책임의 귀속 구조를 법률 차원에서 정밀하게 설계하는 일이다. 장병의 권리 보호와 군 지휘체계의 안정성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완성돼야 할 헌법적 과제다.

 

군에서의 모호함은 곧 혼란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혼란은 전장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군에 대한 신뢰는 선언이나 선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분명한 법적 기준과 일관된 책임체계, 그것이 민주적 통제의 실질적 완성이며 군이 국가의 마지막 안전판으로 기능하기 위한 조건이다. ‘전장은 혼선을 허용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 역시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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