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23일 서울 FKI타워에서 연 고준위 방폐물 순회 토론회에서 “(서울 시민도) 고준위 방폐물 처리 사업이 얼마나 잘 진행되는지 모니터링하고 의견을 내 줘야 사업이 제대로 잘 갈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서 고준위 방폐물 순회 토론회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마련은 우리나라가 더 미루기 어려운 과제다.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26기의 원전을 운영하며 매년 500~700톤(t)의 사용후핵연료를 배출하고 있다. 지난 40여년간 쌓인 사용후핵연료가 약 1만 7000t에 이르며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일부는 포화가 임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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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이 같은 시급성을 알고 있지만 관련 정책은 이제 막 출발한 상황이다. 지난 9월에서야 2060년까지 고준위 방폐물을 반영구적으로 저장할 지하 최종처분시설 마련하기 위한 절차를 법제화한 수준에 그친다. 이미 운영 단계에 접어든 핀란드나 처분시설을 착공한 스웨덴은 물론 부지 공모·선정 절차에 착수한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 일본보다 뒤처져 있다.
정재학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장(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은 “현재 국민 개개인이 약 370g 정도의 고준위 방폐물을 감당해야 한다”며 “우리 후손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문제의 첫발을 제대로 띄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만,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지하 500m 심층부에 반영구적으로 보관한다고는 하지만, 고준위 방폐물 입지를 흔쾌히 반길 지역, 국민이 나타날 가능성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 필요성은 알지만 정작 어디에 할지를 정하기 어려운 ‘고양이 목의 방울달기’다.
정부 에너지 정책 홍보기관인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지난달부터 광주와 대전, 부산, 서울을 돌며 대국민 소통 순회 토론회를 열고 있는 것도 이 난제 해법 모색을 위해서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서울 주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문가들이 그 해법을 모색했다. 최성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같은 전문가는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을 왜 500m 심층부에 만드는지에 대한 기술적 설명을 제공하고, 행정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정책 갈등 해소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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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홍보와 합리적 보상 체계 필요”
정주용 한국교통대 행정정보융합학과 교수는 시민, 지역 주민이 자기 결정권을 갖고 정책 참여를 할 수 있는 틀 안에서 올바른 정보를 유통할 수 있는 홍보와 충분한 보상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과거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을 주민 참여나 경제적 보상 없이 비밀스레 추진하려다 보니 안면도, 굴업도, 부안 사태가 터진 것”이라며 “꾸준한 홍보와 합리적인 보상 체계 마련을 통해 정책 수용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정책 추진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의 사례처럼 선정된 지역뿐 아니라 응모한 모든 지역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식으로 정부와 국민 간 ‘신뢰 자본’을 형성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수정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총장 역시 모든 국민과의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을 강조했다. 박 사무총장은 “서울 시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냈다면 지금까지의 실패는 없었을 것”이라며 “정부가 중앙집권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국민이 균형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서울 사람들에겐 먼 지역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소형모듈원자로(SMR) 시대가 되면 여러분 바로 옆에 소형 원전이 들어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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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방폐물 처리 사업 실무를 맡을 준정부기관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역시 이해관계자의 관심을 당부했다. 김유광 공단 고준위기획실장은 “400명의 공단 직원 중 경주 중·저준위 처분시설 관리 인력을 뺀 고준위 사업 담당인력은 50명 정도이고 이 인력만으로 현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공학자뿐 아니라 인문·사회 쪽 네트워크도 잘 활용해 이 장기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고준위 특별법 시행으로 설치된 국무총리 소속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원회와 원자력환경공단은 당장 내년부터 13년 이내에 전국에 걸친 기초 조사와 지자체 공모를 통한 부지 선정 등 법적 절차를 하나씩 진행할 예정이다.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유치 지역에 대한 최소 3000억원의 지원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지역 발전에 활용할지도 하나씩 정해나가야 한다.
이주수 에너지정보문화재단 대표는 “고준위 방폐물 문제는 특정 지역이 아닌 국민 모두가 함께 사실 기반으로 이해하고 논의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며 “재단도 과학적 정보에 기반한 소통의 장을 계속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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