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리 예르마크 전 비서실장 비리 연루로 지난달 말 사임
젤렌스키 "인적 교체보다 전쟁 더 중요"…일각선 "신뢰할 인물 안 보여"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자기 오른팔이던 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실 비서실장의 사임 이후 후임자를 찾지 않고 있다.
23일(현지시간) 키이우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지난달 말 비리 사건에 연루된 예르마크 전 비서실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후 젤렌스키 대통령의 최측근 보좌진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통령실 소식통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아직 이 권한을 다른 누구에게도 위임하지 않았다며 "현재 많은 사안이 대통령과 직접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예전엔 예르마크 비서실장이 (평화 계획) 초안을 작성하면 대통령이 승인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협상팀과의 회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파트너들과 협력하며 직접 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 전문가 볼로디미르 페센코는 "대통령실 수장이 거의 한 달 동안 공석이라는 건 사실상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대통령실을 운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예르마크 전 비서실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2019년 집권한 이후 외교 업무를 총괄하다 2020년 2월 비서실장으로 승진한 뒤 '문고리' 역할을 하면서 국정 운영을 실질적으로 좌우해 왔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이후엔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든 해외 순방에 동행할 정도로 대통령의 신임도 엄청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를 사실상 '공동 대통령'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의 막강한 권력에 내부 적들도 많이 생겨났다.
예르마크 전 비서실장의 사임 이후 정치권 내 긴장은 일부 완화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속한 집권당 소속 한 의원은 "예전엔 예르마크 비서실장이 이끄는 전능한 사무실의 이미지가 국회의원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며 "이제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다"고 귀띔했다.
야당 홀로스 소속 야로슬라우 유르치신 의원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여전히 확고한 통제권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예르마크 시절만큼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예르마크 전 비서실장의 후임에 대한 질문에 앞서 "현재 인적 교체보다 전쟁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비서실장 인선을 우선순위에서 미뤄뒀다.
대통령의 한 측근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여전히 대통령실의 미래 형태를 검토중이며, 한 가지 가능성은 기능을 축소해 오로지 "기술적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측근은 "대통령실의 미래 형태는 미국과의 협상 결과와 이후 정치 전략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당 유럽연대당 소속 미콜라 크냐지츠키 의원은 "대통령은 그 자리에 정확히 어떤 인물이 필요한지 결정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결정에 따른 모든 부정적 여론을 떠안는 인물이 될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비서 역할만 할 인물이 될지" 라고 전했다.
집권당 소속 한 의원은 대통령이 비서실장 후임자를 찾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이는 인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제는 대통령이 예르마크만큼 신뢰할 만한 인물이 누구냐는 것"이라며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예르마크 전 비서실장에게 계속 의존하고 있으며, 두 사람이 자주 소통한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 한 소식통은 예르마크 전 비서실장이 "결정을 내리지도 않고, 그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그들은 오랜 친구 사이였으니 친구로서 대화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치 전문가 페센코는 예르마크 전 비서실장의 사임 후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 예르마크가 가장 유해한 요소였다"면서 "예르마크식 접근법이 계속해서 대통령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면, 젤렌스키 대통령 주변의 긴장이 다시 고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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