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총학생회장 성폭력 피해자는 왜 총학생회를 떠나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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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총학생회장 성폭력 피해자는 왜 총학생회를 떠나야 했나

프레시안 2025-12-23 17:31: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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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인하대학교 인권센터에 학생 간 성폭력·성희롱 사건이 접수됐다. 피해자는 총학생회 구성원이었던 A 씨, 가해자는 현직 총학생회장 B 씨다. 신고서에는 A 씨가 겪은 성폭력과 관련한 진술, B 씨가 A 씨에게 "걸X 같다"고 발언한 성희롱 녹음본, 둘 사이 대화 기록 등이 담겨 있다.

인권센터에 접수된 신고서와 A 씨와 B 씨 사이 대화 기록을 보면, 사건 이후 A 씨는 B 씨에게 수차례 "사건 당일 무서웠다" "그래서는 안 됐다" 등의 문제제기를 했다. 또 그가 성폭력 사실을 인정하고 총학생회장직에서 내려올 것을 요구했다.

B 씨는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되는 짓을 했다", "회피할 생각 없다.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 책임지고 살아가겠다" 등 성폭력을 인정하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그러나 법적 자문을 받은 뒤부터는 성폭력 혐의를 부정하고 형사 고소를 언급하며 A 씨를 압박하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A 씨는 상반기를 넘긴 지난 7월경 총학생회를 나왔다. 반면 B 씨는 현재 회장직을 이어가며 올해 말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다만 B 씨는 졸업준비금 4800여만 원을 목적과 다르게 사용한 점 등을 지적받아 인하대 특별감사위원회로부터 해임 건의 처분을 받은 상태다.

B 씨는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프레시안> 질의를 거부하고 A 씨에 대한 "형사 고소"를 예고했다. 수일에 걸쳐 해명을 요청하자, B 씨는 결국 통화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사건 당일 신체 접촉 과정에서 A 씨의 동의를 구했다 △사건 이후로도 A 씨와 한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사건 직후 A 씨가 성폭력을 신고하지 않았다 △A 씨에게 건넨 사과는 성폭력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A 씨가 "가스라이팅" 등 본인을 조종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주위 사람들에게 했다 등을 주장하며 성폭력이 허위라고 항변했다.

또 B 씨는 "A 씨가 사건 이후 B 씨를 공격적으로 대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 "A 씨가 생리(월경) 주기 때문에 예민한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A 씨가 허위로 성폭력을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고 했다.

<프레시안>과 만난 A 씨는 자신이 겪은 일이 명백한 성폭력이었다고 호소했다. 그는 세 시간에 걸쳐 지난 2월 벌어진 성폭력부터 총학생회를 나오기까지 벌어진 2차 피해를 털어놨다. 그가 12월이 되어서야 성폭력 피해를 밝힌 이유에는 '총학생회'라는 집단의 특수성이 작동하고 있었다. 다음은 지난 19일 A 씨와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인하대학교 전경ⓒ인하대

프레시안 : 인권센터에 신고한 성폭력·성희롱 피해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A : 성폭력 사건은 올해 2월 2일 일어났다. 당시 나는 남자친구와 이별 등의 문제로 일상생활을 전혀 못 하는 상태였다. 주 5일 가야 하는 근로장학생 업무의 대부분을 빠졌고, 총학생회 업무를 하러 학생회실에 갔다가 하루 종일 울기만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성폭력이 벌어진 날 새벽에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동네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B 씨가 '위험하니 같이 있어 주겠다'며 찾아와 함께 걸어 다녔다. 그러다 B 씨가 "너무 춥다. 우리 집에 핫팩 있으니 가져가라"고 해 그의 집에 갔고, "아무 짓도 안 할 테니 자고 가라"고 해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B 씨가 나를 안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에 자세를 틀어 나를 안고 있는 팔을 뿌리쳤지만, 그는 다시 내 몸에 팔을 올렸다. 그 뒤로 성폭력이 이어졌다. 나는 몸을 뒤집어 신체 접촉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B 씨는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타 제압한 상태에서 성폭력을 계속했다. 거구의 B 씨가 올라타 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공포에 휩싸여 저항하지 못하던 중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빌미로 약속이 있다고 말한 뒤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사건 당일에는 인지부조화가 일어나 내가 성폭력을 겪었단 생각조차 못했다. 나중에 B 씨와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 뒤에야 "꿈이 아니었구나. 내가 성폭력을 겪은 게 맞구나" 생각했다.

프레시안 : B 씨는 사건 당일 A 씨에게 신체 접촉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A :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유년시절 사촌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어 지금껏 사귄 남자친구들과 성관계는 물론 유사 행위조차 하지 않았다. 관계를 맺지 않아 준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한 남자친구가 있을 정도다. 연인과도 하지 않은 성관계를 연애 감정이 없던 B 씨와 하고 싶었을 리가 없다. 만약 내게 동의를 구했으면 나는 분명 거부 의사를 밝혔을 거다. 성폭력 당시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도 없었다.

프레시안 : B 씨는 성폭력을 겪어놓고 왜 2월에 신고하지 않았으며, 자신과 한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느냐고도 항변한다.

A : 원래도 불안정한 상황이었는데, 성폭력을 겪은 이후부터는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정신상태가 극도로 나빠졌다. 그때 내게 남은 것이 총학생회 뿐이었어서, 연말까지 총학생회 활동을 마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3월까지 B 씨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했다.

심리상담과 약물복용으로 정신상태를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한 4월부터는 조금씩 B 씨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4월 23일, B 씨가 오프숄더 상의를 입은 내게 "걸X 같다"고 말하자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 이때부터는 총학생회 업무 등 일부 소통을 제외하고는 그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했다.

▲인하대 총학생회장 B 씨가 법적 자문을 받기 전 성폭력 피해자 A 씨와 나눈 대화 내용. ⓒA 씨 제공
▲인하대 총학생회장 B 씨가 법적 자문을 받은 뒤 A 씨와 나눈 대화 내용. ⓒA 씨 제공

프레시안 : 관계 단절 이후 성폭력과 관련해 B 씨와 대화를 나눈 적 없나.

A : 대학 축제를 마친 5월 중순, B 씨에게 성폭력 사건과 함께 그동안 쌓여 온 불편한 일들을 털어놓고 업무와 관련한 이야기만 해 달라고 전했다. 당시 그는 "선 넘은 행동한 것 맞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만 남는다"고 했다. 6월에는 총학생회 일부 구성원들에게 사건이 알려지면서 B 씨에게 사퇴 요구 등의 문제 제기가 이뤄졌고, B 씨는 "회피하지 않겠다.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 책임지고 살아가겠다"라며 성폭력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잘못을 책임지겠다던 B 씨는 법적 자문을 받은 뒤로부터 성폭력을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간 했던 사과는 전부 성폭력이 아닌 다른 일들에 대한 사과였다고 하고, 나는 물론 사퇴를 요구한 총학생회 구성원 C 씨에게도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형사고소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한동안 B 씨의 사퇴와 관련한 논쟁이 이어졌으나, 탄핵절차의 어려움 등으로 없던 일이 됐다.

프레시안 : A 씨가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B 씨를 가스라이팅(심리 지배)했다' 식의 발언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A : B 씨가 내 앞에서는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성폭력을 부정하거나 나에 대한 험담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황당한 마음에 "마치 내가 B 씨를 가스라이팅 하는 모양새다" 등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B 씨에게 새어나가는 과정에서 발언의 취지가 와전된 듯하다. 내가 정말 B 씨를 가스라이팅하려고 했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을 거다. 상황이 내게 불리해질 텐데, 굳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사퇴 무산 뒤에는 어떤 일들을 겪었나.

A : B 씨가 총학생회 구성원들에게 'A가 허위 성폭력을 주장하고 있다'고 거듭 말하며 나를 고립시켰다. 성폭력 이후 잠시 유지했던 친밀한 관계가 주요 근거였다. 7월에는 과거 B 씨 사퇴 요구 과정에서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총학생회 구성원 중 나를 포함해 단 두 명만 수리하는 방식으로 나를 총학생회에서 내보냈다. 사직서는 원본이 아닌 사본이었고, 면담 등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절차가 없어 항의했지만 B 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학내 언론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총학생회 일부 구성원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사건을 알린 적 없는데, 어떻게 내가 피해자인지 알고 찾아왔는지 몰라 무서웠다. 동의 없이 내 정보가 언론에 들어갔으며, 대뜸 총학생회실에 찾아온 점 등이 문제라고 생각해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자 해당 언론의 보도에는 B 씨의 입장만이 담겼다. 정정보도를 요청하려 했으나, 제3자를 통해 "해당 언론이 정정보도를 받아줄 생각이 없다고 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 반론을 포기했다.

▲2022년 7월 22일 인하대 캠퍼스 내에서 또래 여학생을 성폭행한 뒤 건물에서 추락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1학년 남학생 A(20)씨가 인천시 미추홀구 미추홀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총학생회를 나오게 된 것은 7월인데, 12월에 신고 및 공론화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A : 처음에는 학내 인권센터에 곧바로 신고하려 했는데, 사건을 접수해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B 씨의 편을 들어줄 것 같다는 걱정에 주저하게 됐다.(인하대 인권센터 산하 성평등상담센터는 과거 스토킹 피해자인 학생에게 '이 정도로 끝난 것이 어디냐, 좋은 경험한 셈 쳐라' 등의 발언을 하고 상담기록을 분실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편집자) 법적 자문도 받았으나, B 씨를 형사처벌하는 것이 문제 제기의 목적이 아니기에 포기했다.

총학생회장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학생사회가 받을 타격도 문제였다. 인하대는 몇 해 전 인하대에 성폭행 추락사 사건이 발생했고, 작년에는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이 터졌다. 이 상태에서 총학생회장 성폭력 사건까지 알려지면 학생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요 사업이 모두 마무리된 연말에 신고와 공론화 절차를 밟기로 마음먹었다.

프레시안 : 성폭력 사건을 알리면서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A :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학교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총학생회 활동에 할애했다. 하지만 B 씨로부터 성폭력을 겪고, 강제로 총학생회에서 나오게 되면서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단절됐다. B 씨와 마주칠까 봐 학내 행사 현장을 피해다니고, B 씨와 관련한 소식을 접할까 봐 학내 언론도 보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학생사회 대표인 총학생회장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이대로 묻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교 구성원들은 총학생회장의 성폭력을 알 권리가 있다. 최근 성범죄 관련 사건들이 많이 보도되고 피해자분들이 용기를 내어 싸우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용기를 가지게 됐다. 모든 성범죄 피해자분들이 당당하게 살아가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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