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우리나라가 원자재의 99.7%를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있는 가운데, 위기 시 국가가 바로 동원할 수 있는 ‘한국형 전략상선대’를 구축할 수 있는지가 해상주권과 조선·해운 산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해운협회는 이같은 주제를 담은 ‘우리나라 해상주권 확보 방안 마련 국회세미나’를 22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개최하고, 국가 해상 공급망 보호를 위한 심도 있는 논의를 가졌다고 23일 밝혔다.
국민의힘 조승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해운협회와 포스코플로우가 주관한 이날 세미나에는 공동 주최자인 조승환 의원을 비롯해 박정석 한국해운협회장, 양창호 상근부회장, 해양수산부, 무역협회, KMI, KR 등 해운·물류 및 유관 산업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먼저 조승환 의원은 이날 개회사를 통해 “자국 우선주의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바다는 국가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안보 영역”이라며, “경제 대동맥인 해상수송망을 지키기 위해 해양 강국들의 발 빠른 입법 움직임에 맞춰 우리도 국가 차원의 강력한 지원 체계를 신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석 한국해운협회장은 인사말에서 “세계적인 선복량과 조선 기술력을 보유한 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조속히 해운·조선 안정화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며 “위기 시 국가가 우선 동원할 수 있는 ‘한국형 전략상선대’ 도입과 이를 뒷받침할 법안 마련은 국가 경제와 안보를 지탱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첫 번째 주제 발표자로 나선 김경훈 한국해운협회 이사는 ‘K전략상선대 도입 필요성’을 주제로 해상 공급망 위기 시 발생할 구체적인 경제적 타격 수치와 확보 로드맵을 제시했다. 김 이사는 “우리나라는 원자재의 99.7%를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붕괴 시 경제 마비가 불가피하다”며, “조사 결과 해상 운송 차단 시 하루 약 5조5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하고, LNG선 1척의 입항만 중단돼도 210만 가구의 전기가 한 달간 중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국의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나라도 2040년까지 최소 200척 규모의 전략상선대를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원유, LNG, 양곡 등 9대 전략 물자를 선정하고, 기존 국가필수선박 88척을 전략상선대로 전환 및 확대해 100척을 상시 운영하는 한편, 나머지 100척은 국내 조선소에 신조 발주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김 이사는 특히 “100척의 신조 발주 시 조선업 30조원, 후방 산업 30조원 등 총 60조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기대된다”며 건조부터 운영 전 주기 관리를 위해 기존 법 개정이 아닌 별도의 신규 제정법 마련이 정당함을 역설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추가 발언을 통해 전략상선대 도입이 단순한 해운 지원을 넘어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재건 및 수호’를 위한 핵심 대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박 회장은 “미국과 일본이 추진 중인 해사 안보 입법의 본질은 결국 자국 조선소의 재건과 선복량 확대를 통한 해양 패권 유지”라며 “일본이 10조 엔 규모의 지원을 통해 세계 건조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려 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강력한 기금을 마련해 현재 20% 내외인 건조 점유율을 25% 이상으로 유지하는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 조선업이 기술력 1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원가 경쟁력에서 중국 등에 밀려 점유율이 10%대까지 추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일본의 철강 가격 보전 모델처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에서도 지속 가능한 지원책을 적극 벤치마킹해 우리 조선소가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 문제는 해운업계만의 주장이 아니라 조선업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산업 생존의 문제”라며 인식의 전환을 촉구했다.
두 번째 발표자인 한국선급 유진호 팀장은 ‘미·일 해사산업 안보입법과 한국형 SHIPs 법안의 필요성’을 통해 미국과 일본의 최신 안보 입법 사례를 소개하며,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실효성 있게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인 ‘한국형 SHIPs 법안’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전문가들의 정책 제언이 쏟아졌다.이봉걸 한국무역협회 실장은 “전략상선대는 단순한 물류 서비스를 넘어 국방력의 일환이자 안보 자산”이라며 입법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한국해양진흥공사 이상석 팀장은 선박 노후화 문제를 지적하며 RG 발급 개선 등 다각적인 지원책 검토 방침을 밝혔다. 김앤장 이재복 외국변호사는 해운·조선·금융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통합한 제정법 마련이 정책 목표 달성에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안영균 박사는 이번 연구가 전략상선대를 추상적 개념에서 수요 추정이 가능한 구체적 정책 대상으로 격상시켰다고 평가했다. 안 박사는 특히 200척 규모의 선대를 평시와 전시를 관통하는 상시 운용 체계로 설계한 점과, 100척의 신조 로드맵을 통해 해운 안보를 중소 조선소의 생존과 직결된 산업 정책으로 연결시킨 점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해운 산업을 단순히 시장 논리에 맡기기보다 반도체나 배터리처럼 국가 전략 산업 시스템으로 지정하여 범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하며, 이번 논의가 검토 과제를 넘어 국회를 통한 입법 아젠다로 업그레이드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해양수산부 김승룡 팀장은 전략상선대 도입의 필요성과 방향성에 대해 강력한 지지와 공감을 표했다. 김 팀장은 현행 88척 규모의 국가필수선박 제도가 가진 비용 보전 및 관리상의 한계를 인정하며, 이를 ‘전략상선대’로 확대 개편하는 취지에 적극 동감했다. 특히 이번 제안이 해수부 국정과제인 ‘핵심 에너지 적취율 향상’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200척이라는 목표치를 정책 지표로 삼아 단계적으로 확충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한, 일본의 해사 클러스터 지원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한국해양진흥공사 및 새롭게 설립될 동남권 투자공사 등의 자금을 활용한 다각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략상선대 도입이 조선 산업과의 상생으로 이어지는 만큼, 국회를 통해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와 긴밀히 협력해 실효성 있는 안보 거버넌스를 구축하겠다고 답변했다.
국민의힘 조승환 의원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전략 상선대 도입 및 해기 인력 양성을 위한 강력한 입법 추진 의지를 피력했다. 조 의원은 “조선과 해운의 지속 가능한 상생을 위해 조선소·해운사·금융기관이 중심이 된 선주사 모델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전략 상선대와 관련하여 “단순한 건조 비용 지원 논리를 넘어 국가 전략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명확히 포장하여 국회에서 실질적인 입법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해운협회는 이번 세미나에서 도출된 의견들을 바탕으로 국회 및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대한민국 해상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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