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목의 경영전략] 쿠팡이 던진 질문, 숫자 너머의 기업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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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목의 경영전략] 쿠팡이 던진 질문, 숫자 너머의 기업가 정신

소비자경제신문 2025-12-23 15:15: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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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목 작가('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저자)
최송목 작가('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저자)

[소비자경제] 최송목 작가 =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성과를 숫자로만 평가하는 데 익숙해졌다. ‘얼마나 벌었는가?‘ 매출, 이익, 시가총액, 몸값 등 질문은 늘 하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어느새 모든 성공의 유일한 기준처럼 되어버렸다.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돈은 목적일까 아니면, 결과일까 과정일까?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야 할 사건이 생겼다.

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은 월드투어 파이널스 우승 직후 뜻밖의 말을 남겼다. 단일 시즌 역대 최다승 타이, 77경기 73승이라는 기록, 남녀 단·복식을 통틀어 최초의 100만 달러 상금, 통산 상금 역대 최고액 등 모든 수치가 그의 위상을 증명하는 순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얼마를 벌었든 상관하지 않고, 저는 제가 좋아하는 배드민턴을 했다는 것에만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이 말은 겸손을 가장한 수사가 아니다. 돈의 무게를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무게를 정확히 알기에 가능한 발언이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몰입과 과정에 대한 진지함이 축적되어 결국 결과를 만든다는 사실을 그는 몸으로 알고 있다. 그에게 돈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 뒤에 따라온 부산물이었다.

경영자 역시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돈을 목표로 삼는 경영자와, 성장을 과정으로 인식하는 경영자다. 전자는 성과에 도달하는 순간 쾌락이나 과욕의 터널로 빠져들기 쉽다. 빠른 성공만큼 빠른 소진을 겪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작은 부자’다.

반면 후자는 경영을 하나의 축적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돈보다 방향을, 결과보다 완성도를 중시한다. 회사는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과 판단이 쌓여 가는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이런 부류가 흔히 ‘큰 부자’로 불린다.

작은 부자가 돈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큰 부자는 돈을 행복으로 가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양보다 질, 속도보다 방향을 따지는 태도에서 두 부자의 간극은 분명해진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창시자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돈을 위한 돈이 아니라 성공의 상징으로서의 돈이다.” 세계적인 부자들의 공통점은 역설적이다. 그들은 돈을 직접 추구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을 관찰했고, 욕망을 읽었으며, 불편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러다 보니 돈이 저절로 따라왔다. 돈을 성공의 부산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선, 그리고 그 돈이 불러오는 유혹과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절제. 이것이 진정한 기업가 정신의 뿌리가 아닐까.

시인 문신은 「나무를 보라」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봄날, 나무의 완성은 그림자에 있다.” 사람들이 나무의 꽃과 열매에 눈길을 두는 동안, 나무는 묵묵히 그늘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외형적 성장과 실적이라는 꽃 너머에 남는 것은 그림자다. 조직문화, 노동 환경, 관계의 온도와 방향 등이다. 사업을 생계수단이나 돈벌이에 머무르게 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킬 것인지에 따라 그 그림자의 크기와 밀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같은 일을 반복해도 누군가는 생계형 노동자로 남고, 누군가는 자신의 분야를 완성하는 '거장'이 된다. 이는 기술의 숙련도가 아니라 일을 대하는 관점과 장인 정신의 차이다.

역사적으로 큰 부자의 큰돈은 늘 큰 영향력을 동반해 왔다. 출발점은 달라도, 시장에서 압도적인 규모를 확보한 기업은 어느 순간 사회적 힘을 갖게 된다. 이처럼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우리 일상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기업일수록, 그 영향력의 크기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절제가 절실해진다. 절제력을 잃은 성장은 방향을 놓친다. 기업이 커질수록 기업가 정신이 더 또렷해야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최근 쿠팡이 기업가 정신을 다시 소환했다. 개인정보 대규모 유출 사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노동 환경 문제 등으로부터다. 쿠팡은 분명 한국 유통 시장의 판도를 바꿨고, 속도와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압도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이제 쿠팡은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얼마나 크고, 얼마나 빨리 벌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가치 위에서 이 속도와 효율이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속도와 효율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면, 그 혁신은 결국 숫자를 위한 숫자에 머물 위험이 있다. 생활의 편리함을 확장하는 기술인지, 아니면 인간의 존엄과 균형을 함께 고려하는 성숙한 진화인지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쿠팡의 기업가 정신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기업의 존재 본질이 돈과 숫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돈이 충분해진 이후에도 오직 돈과 효율만을 향해 달린다면, 사회는 그 기업과 오래 공존할 수 없다. 기업가 정신은 단순한 성장의 언어가 아니다. 때로는 비효율을 감수하고, 속도를 절제할 줄 아는 용기까지 포함하는 성숙한 성장의 언어다.

숫자에만 몰입해 사회와의 관계와 균형을 잃는 순간, 그 성장은 방향을 잃는다. 나침반 없는 배가 속도를 낼수록 더 멀리 표류하듯, 기업 역시 ‘숫자 너머’를 보지 못하면 성장은 오히려 위험이 될 수 있다.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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