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상품 판매 책임을 제도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금융상품 분쟁조정과 검사·제재 기능을 하나의 체계로 묶으면서, 판매 이후 책임까지 추적·관리하는 감독 기조가 분명해졌다. 은행권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이번 조직개편은 은행권에서 사실상 판매 규제 강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사태를 겪은 은행들로서는 상황을 가볍게 볼 수 없다. 대규모 제재가 예고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는 “금융상품을 팔수록 리스크가 커지는 구조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비이자이익 확대 전략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서다.
◇분쟁에서 검사로…판매 책임의 종착점 바뀌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2일 조직개편을 통해 금융상품 분쟁조정의 ‘직접 처리’ 기능을 각 업권 감독·검사국으로 이관했다. 분쟁조정과 검사·제재 기능을 분리해 운영하던 기존 틀에서 벗어난 것이다. 금융상품의 설계부터 판매, 사후 분쟁까지를 하나의 책임 흐름으로의 관리 의지다.
이제 금융상품 분쟁은 민원 단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분쟁조정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곧바로 검사로 이어질 수 있다. 사후 구제보다 사전 책임에 방점을 찍은 구조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형식은 조직개편이지만 현장 체감은 규제 강화”라며 “고위험 상품 판매에 대한 부담이 확연히 커졌다”고 말했다. 판매 과정 전반을 한층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셈이다.
◇불완전판매, 더 이상 ‘분쟁’이 아니다
이번 개편으로 금융상품 분쟁의 성격도 달라졌다. 그동안 분쟁조정은 피해자 구제에, 검사는 제재에 각각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상품 제조사와 판매사의 책임 역시 분리돼 논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분쟁조정과 검사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불완전판매는 곧바로 감독·검사 대상이 된다. 판매 창구에 선 금융사의 책임이 더욱 또렷해진 셈이다.
은행권이 이번 개편을 홍콩 H지수 ELS 사태의 연장선으로 바라보는 배경이다. 금융당국은 해당 사태와 관련해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주요 은행들에 대해 대규모 과징금 부과가 예고된 상태다. 상품을 직접 설계하지 않았더라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신호다. 한 은행 관계자는 “판매 과정의 설명 책임을 제도적으로 명확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LS 트라우마 이후…비이자이익 전략 딜레마
은행권은 이미 ‘이자장사’ 논란에 직면해왔다. 가계대출 중심의 수익 구조는 반복적으로 비판 대상이 됐고, 비이자이익 확대는 선택이 아닌 과제가 됐다. 방카슈랑스, 신탁, 자산관리, 구조화금융 비중을 늘려온 배경이다.
그러나 ELS 사태 이후 환경은 급변했다. 대규모 분쟁과 배상 부담을 경험한 데 이어 감독 체계마저 사전 책임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고위험 상품에 대한 접근은 구조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 완전판매가 상대적으로 쉬운 상품일수록 수수료는 낮다.
리스크를 줄이면 수익성이 떨어지고, 수익성을 추구하면 감독 부담이 커진다. 은행권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단기적인 실적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고위험 상품 판매 리스크가 구조적으로 확대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비이자이익 모델 전반의 재설계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소비자 보호 강화와 수익 다변화 전략 간의 긴장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조직개편은 그 긴장을 제도적으로 드러낸 분기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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