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플라스틱 종합대책 초안 공개…일회용품 규제 다시 강화
정부마다 나왔던 대책 반복…정권·경제상황 따라 오락가락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옥성구 기자 = 화석연료로 만든 플라스틱 폐기물량을 2030년 전망치보다 30% 감축하는 내용의 정부안을 두고 일각에선 생활에 과도한 불편을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회용 컵 등 플라스틱 제품 상당수가 생활 편의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려는 규제들이 '국민 불편'이나 '소상공인 부담' 등을 이유로 시행이 유예되거나 철회된 사례가 많은 만큼 이번에 내놓은 방안의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 윤석열 정부 때인 2022년 10월 '전(全) 주기 탈(脫)플라스틱 대책' 등을 각각 내놓은 바 있다.
◇ 일회용 컵값 따로 받고…빨대는 요청 시에만 제공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3일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초안을 공개했다.
2030년 1천11만9천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재 플라스틱 폐기물량을 700만t으로 30% 감축한다는 것이 핵심 목표다.
신재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으로 현재 생산·사용되는 플라스틱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기후부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일회용품 규제를 다시 강화하기로 했다.
가장 주목되는 규제는 카페 등 식음료업체 매장 내 종이컵을 포함한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하고 '테이크아웃'을 위해 일회용 컵 사용 시 컵값을 음료값과 따로 받도록 하는 것이다.
컵값은 가게가 공급받는 가격 수준으로 가게 측이 자율적으로 정하게 할 예정이다.
식음료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본사에서 공급받는 플라스틱 일회용 컵 가격은 100∼200원 정도로 알려졌다.
기후부는 컵값을 '추가'로 받게 하는 게 아니라, '별도'로 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커피 한 잔 값이 4천원이라면 현재는 '커피값'으로 4천원을 받는데, 앞으로는 '커피값'으로 3천800원을 받고 컵값으로 200원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후부 설명대로면 음료를 일회용 컵에 받았을 때 영수증에 컵값이라는 항목만 새로 표기될 뿐 부담이 늘지 않는다. 부담이 그대로라면 대부분 소비자는 그대로 일회용 컵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을 사용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기후부는 텀블러 등 개인 다회용 컵 사용 시 할인해주고 탄소중립포인트를 제공해 다회용 컵을 쓰는 사람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이는 현재도 주어지는 혜택이어서 편의를 위해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행태를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매장 내 일회용 종이컵 사용도 다시 금지된다.
플라스틱 컵 규제에 따라 종이컵 사용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를 고려한 것이다.
기후부는 카페나 제과점 등 '식품접객업소 중 휴게음식점'에서 용량이 큰 종이컵만 우선 규제하고, 식당 등에서 물컵으로 쓰이는 작은 종이컵은 실태조사부터 하기로 했다.
주요 식음료 프랜차이즈 17곳에서 2023년 사용된 일회용 컵은 9억3천989만2천여개다.
정부는 2019년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을 발표하면서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종이컵 37억개를 비롯해 연간 일회용 컵 84억개가 사용된다고 밝혔다.
최근 인건비가 오르면서 식당 일회용 컵 사용량은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기후부는 빨대의 경우 플라스틱이든 종이든 고객이 요청할 때만 제공하게 하기로 했다.
고객이 바로 빨대를 가져갈 수 있게 눈에 보이는 곳에 놓아두는 것도 금지한다.
음료를 줄 때 빨대를 함께 주지 않는 것으로 '기본값'을 바꿔 사용량을 줄이는 이른바 '넛지형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다만 '건강상 이유로 빨대가 꼭 필요한 경우' 등 빨대를 요청할 수 있는 경우에 제한을 두지 않아 점원과 소비자가 번거로워질 뿐 빨대 사용량을 줄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택배 과대포장 규제 시행…온라인플랫폼에 재활용 의무 검토
이번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초안에는 '택배 과대포장 규제'도 담겼다.
기후부는 작년 4월 ' 제품을 소비자에게 수송하기 위한 일회용 포장'은 포장공간비율이 50% 이하이고 포장 횟수는 한 차례여야 한다는 규제를 시행하면서 2년간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단속하지 않았다.
포장공간비율은 상자 등 용기 내부에서 제품이 차지하지 않고 있는 빈 곳의 비율로, 이 비율이 낮을수록 제품 크기에 꼭 맞는 용기를 쓴 것이다.
택배 과대포장 규제를 앞두고 단속이 가능할지 의문이 제기된다.
작년 택배 물동량이 59억5천여개로 60억개에 육박하는 등 수십억개에 달하는 택배를 일일이 감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부는 '포장재를 재활용한 택배' 등에 대한 규제 완화를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대책에는 현재 '일반용은 1㎏당 150원, 건축용은 1㎏당 75원'인 플라스틱 폐기물 분담금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유럽연합(EU) 회원국 평균 플라스틱 폐기물 분담금은 1㎏당 600원 정도다.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생산자책임제활용제(EPR) 대상에 포함, 컵 제조·수입업체나 식음료 프랜차이즈가 일정량을 수거해 재활용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의류도 생산자책임제활용제 대상에 추가하고 재고를 소각하는 관행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또, 기후부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와 관련해 대상 제품을 확대하면서 해외직구가 늘어난 상황을 고려해 온라인플랫폼에도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먹는샘물에 라벨(제품정보를 담은 띠)을 부착할 수 없는데, '무(無)라벨 제품'이 먹는샘물뿐 아니라 다른 음료 제품으로 확산하도록 '재활용 등급 평가'가 강화된다. 기후부는 라벨이 없는 제품에만 재활용 분담금이 최대 50% 감경되는 '최우수' 등급을 부여할 방침이다.
◇ 오락가락 반복한 정책…내년 초 종합대책 확정
이날 정부가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정책을 쏟아냈는데, 중요한 것은 일관된 이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정책이 정권과 경제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종이컵만 봐도 문재인 정부 때 수립된 계획에 따라 2021년 자원재활용법 개정으로 2022년 식당 등에서 사용이 금지됐다가 1년 계도기간 이후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11월 총선을 앞두고 돌연 규제가 철회됐다.
택배 과대포장 규제의 경우 2022년 도입돼 2년간 준비 기간을 거쳐 2024년 4월 시행되긴 했으나 정부가 '2년 계도기간'을 다시 부여하면서 시행이 사실상 추가로 유예됐다.
기후부는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 초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확정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ok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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