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빚어낸 '메이저리그 공장' 키움 히어로즈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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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빚어낸 '메이저리그 공장' 키움 히어로즈의 경제학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2-23 13:04: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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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변칙적 진화 모델'인 키움 히어로즈는 모기업의 재정 지원 없이 자생해야 하는 독립 구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선수를 육성해 메이저리그로 수출하고 그 이적료로 구단을 운영하는 독특한 '선수 수출형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강정호를 시작으로 박병호, 김하성, 이정후, 그리고 최근의 김혜성과 송성문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지난 10여 년간 벌어들인 누적 포스팅 이적료는 약 678억 원(4,605만 달러)에 달하며, 이는 구단 운영 자금의 핵심 축이자 유망주 발굴과 육성을 가속화하는 엔진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주전급 선수의 지속적 이탈로 인한 3년 연속 최하위 기록과 인프라 투자 부족이라는 뼈아픈 기회비용을 동반하고 있다.

 어찌됐건 키움이 보여준 자율 야구의 철학과 데이터 기반의 스카우팅 시스템,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재정적 결핍과 시스템적 한계는 한국 야구 생태계에 던지는 시사점이 분명히 있다.

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아무도 상상못했고, 나조차 그랬다"

키움 히어로즈 송석문의 '미국 잭팟'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이 지난 8월의 무더운 고척 스카이돔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뉴욕 양키스, 시카고 컵스 등 빅리그를 호령하는 11개 구단의 시선은 한 선수의 배트 끝에 고정됐다. 주인공은 이정후도, 김하성도 아닌 송성문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가 태평양을 건너리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2025년 시즌 전 경기에 출장하며 3할 1푼 5리의 타율과 26홈런, 25도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고, 결국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4년 보장 221억 원(1,500만 달러)이라는 잭팟을 터뜨렸다. 송성문은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이 계약을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미국에 갈 것이라 상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며, 나조차도 그랬다고 고백했다.

 이 장면은 키움 히어로즈라는 구단이 한국 야구 생태계에서 점유하는 독특한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키움은 대기업의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KBO 리그에서 유일하게 모기업 없는 독립 구단으로 생존해 왔다. 이들에게 메이저리그 진출은 단순히 선수의 영광이나 구단의 명예를 위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처절한 생존을 위한 비즈니스이자, 구단 통장에 현금을 꽂아 넣는 가장 확실한 수익 사업이다. 2008년 창단 당시 자본금 5,000만 원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며 시작된 이 기묘한 여정은, 초기에는 선수 팔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이장석(59)은 재판 과정에서 "구단 운영 자금 조달을 위한 대여금 계약과 투자 유치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매출 10조 원이 넘는 대기업 총수가 전혀 부럽지 않다"고 호언장덕하기도 했다. 비록 그는 횡령 혐의로 옥고를 치르고 영구 실격되었으나, 그가 남긴 생존의 DNA는 키움 시스템의 뼈대가 됐다.

혁신인가 혹은 절박한 생존인가

선수 수출로 지탱하는 독립 구단

 키움 히어로즈의 재무 제표를 살펴보면 이들이 왜 메이저리그 진출에 사활을 거는지 명확해진다. 한미 선수 계약 협정에 따라 메이저리그 구단이 지급하는 이적료는 계약 규모에 따라 결정된다. 최근 다저스와 계약한 김혜성은 3년 보장 184억 원(1,250만 달러)의 계약을 맺으며 키움에 약 37억 원(250만 달러)의 기본 이적료를 안겼다. 향후 옵션이 실행되면 이 금액은 최대 57억 원(385만 달러)까지 불어난다. 송성문의 진출로 확보한 약 44억 원(300만 달러)의 이적료 역시 키움의 2025년 연봉 상위 40명 합계 금액인 약 44억 원을 상회하는 규모다. 선수를 한 명 보낼 때마다 구단 전체의 한 해 연봉 예산이 확보되는 셈이다.

이러한 경제적 동기는 자연스럽게 스카우팅과 육성 시스템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키움은 당장의 기술적 완성도보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선호하는 신체적 잠재력과 운동 능력에 집중했다. 그들은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는 2-8 평가 척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하여 타격 파워, 송구 능력, 주력을 정밀 측정한다. 특히 유격수와 중견수 등 중앙 수비 라인에서 폭발적인 운동 능력을 갖춘 자원을 선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강정호에서 김하성, 김혜성으로 이어지는 유격수 계보는 우연이 아닌 철저한 설계의 산물이다.

 지도자의 철학 또한 기존의 권위주의적 방식에서 탈피했다. 홍원기 전 감독은 실패할 권리를 육성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그는 누구에게나 시행착오는 있으며, 어린 선수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자신의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장에서 실수를 해도 곧바로 질책하지 않는 믿음의 야구는 선수들에게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선수들은 미국 무대라는 낯선 환경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회복 탄력성을 갖추게 된다. 설종진 감독 역시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며 선수들이 스스로 훈련 스케줄을 짜게 했다. 그는 투수의 고유한 폼을 존중하되 트랙맨이나 랩소도와 같은 데이터 장비를 활용해 부상 위험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미세 조정에 집중했다. 이는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의 선진화된 데이터 야구 시스템에 즉각 적응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키움의 육성 메커니즘 중 가장 독특한 것은 '강제 육성'이라 불리는 실전 투입 전략이다. 대다수 구단이 유망주를 2군에서 수년간 담금질할 때, 키움은 주전의 공백이 생기면 곧바로 신인을 1군 무대에 던져 넣는다. 이정후는 입단 첫해 전 경기에 출장했고, 김하성과 김혜성 역시 선배들의 이적과 동시에 풀타임 주전 기회를 잡았다. 리그 최정상급 투수들을 직접 상대하며 쌓은 수천 타석의 경험은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도 빅리그에 연착륙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선수사관학교 명성 뒤에 숨겨진 최하위의 역설

하지만 고척의 연금술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핵심 자원을 끊임없이 매각해야 하는 운명은 필연적으로 팀 전력의 약화를 초래했다. 키움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 연속 리그 최하위라는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이정후와 김혜성이라는 투타의 기둥이 빠져나간 자리를 경험 없는 신인들이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외국인 선수 영입에서도 비용 절감을 위해 저가 계약을 선호하다 보니 실패 확률이 높았고, 이는 승률이 20%대까지 추락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육성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신인들을 곧바로 1군에서 혹사시키는 전략은 역설적으로 선수 육성을 담당해야 할 2군 시스템을 형해화(본질이나 내용이 사라진채 형식만 남은 상태)했다. 2군에는 정작 성장시켜야 할 유망주가 남아나지 않고, 인프라 투자보다는 당장의 운영비 소진에 급급하다 보니 팜 시스템의 질적 저하가 나타나고 있다.

 팬들의 피로감 역시 극에 달했다. 내가 응원하는 스타 플레이어가 언제든 구단의 현금 확보를 위해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은 구단에 대한 충성도를 약화시킨다. 팬들은 키움 히어로즈를 응원하는 팀이 아닌, 메이저리그로 가는 잠시 머무는 정거장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KBO 이사회는 이러한 키움의 기형적 운영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2027년부터 시행될 '샐러리캡 하한선 제도'는 팀 연봉 총액의 최소 70% 이상을 지출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사실상 투자를 기피하고 포스팅 수익으로 연명하는 키움을 겨냥한 조치다. 키움으로서는 이제 사관학교라는 마케팅 뒤에 숨어 성적을 방기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포스팅 수익을 인프라에 재투자하고 선수들의 처우를 개선하여 성적과 육성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전환점에 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움이 한국 야구에 남긴 유산은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은 자본의 결핍을 시스템의 혁신으로 이겨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메이저리그라는 거대한 시장을 조준하고 선수를 상품화하여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길러내는 과정은, 한국 야구가 내수용 놀이 문화에서 글로벌 비즈니스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에서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고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의 심장부에서 안타를 몰아치는 모습은, 고척의 좁은 연습실에서 땀 흘리는 무명의 유망주들에게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키움 히어로즈의 실험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송성문의 성공적 진출 이후에도 제2의 이정후, 제3의 김하성을 꿈꾸는 원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이 단순한 선수 판매 공장을 넘어, 지속 가능한 명문 구단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향후 유입될 막대한 자본을 어디에 쓰느냐에 달려 있다. 혁신은 결핍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완성은 책임 있는 투자에서 비롯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의 가장 변칙적인 이단아, 키움 히어로즈의 다음 행보에 전 세계 스카우트들의 시선이 여전히 머물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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