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이번 유라시아 아트페어는 여러 의미에서 나에게 ‘처음’이라는 단어로 남는다. 부산에서 참여하는 첫 아트페어였고, 공모에 당선되어 얻게 된 소중한 기회였으며, 동시에 작가로서의 일상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전시를 준비하며 느꼈던 설렘과 긴장, 그리고 전시가 끝난 뒤 마음에 남은 감정들은 단순한 참여 경험을 넘어 앞으로의 작업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공모 당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정은 아직도 선명하다. ‘선정’이라는 결과보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의 방향이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게 닿았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 기회를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유라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아트페어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점은 작가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경험처럼 느껴졌다.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도시에서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은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작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부산에 도착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도시의 리듬이었다. 서울의 일상은 늘 빠르고 촘촘하다. 해야 할 일과 책임이 자연스럽게 하루를 채우고, 숨을 고를 틈 없이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곤 한다. 그러나 부산에 머무는 동안에는 같은 전시 준비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속도는 조금 달라졌다. 바다와 가까운 공기, 낯선 동네의 풍경,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저녁 빛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게 만들었다.
전시는 분명 노동의 연속이었지만, 그 사이사이에 스며든 시간은 오히려 나에게 작은 휴식처럼 다가왔다. 아트페어 현장에서 관람객을 직접 만나는 시간은 늘 특별하다. 이번 전시는 특히 작가가 직접 부스를 운영하며 관람객과 마주하는 구조였기에 작품을 사이에 두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한참을 그림 앞에 서서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해진다”고 조용히 말해주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꺼내며 작품 속 색감이 왜 마음에 닿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 순간마다 나는 작품이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각자의 기억과 감정이 더해지며 새롭게 완성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산에서의 첫 아트페어라는 점은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했다.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닿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왜 계속해서 ‘행복’, ‘위로’, ‘일상의 따뜻한 순간’을 그리고 있는가. 화려한 담론이나 거창한 메시지보다 이번 전시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들은 소박했다. “집에 걸어두고 보고 싶어요.” “하루 끝에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말들은 작가로서의 나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했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 가까이에 머무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들이었다.
유라시아 아트페어는 이름처럼 다양한 문화와 배경이 교차하는 자리였다. 서로 다른 작업 방식과 이야기를 가진 작가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었고, 관람객들은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예술이 반드시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각자의 속도와 언어를 존중한 채 공존하는 상태 자체가 지금의 시대를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 역시 나만의 속도로 작업을 이어가도 괜찮다는 작은 확신을 얻었다.
전시가 끝나고 부산을 떠나기 전, 짧게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있었다. 특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런 여백이 필요했음을, 그리고 이 여백이 앞으로의 작업에 조용히 스며들 것임을 느꼈다. 이번 유라시아 아트페어는 나에게 결과보다 과정이 더 오래 남는 경험이었다. 공모를 통해 얻게 된 기회, 부산에서의 첫 전시,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었던 순간들까지. 이 모든 게 겹쳐 앞으로의 작업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늘 조심스럽고 낯설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된다. 부산에서의 첫 아트페어였던 이번 경험 역시 그렇게, 내 작업의 한 페이지로 조용히 남아 앞으로의 그림 속 어딘가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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