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가계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보다 낮게 묶겠다”는 금융당국의 방침이 공식화되면서, 2026년 가계대출 시장의 위축은 사실상 기정사실이 됐다. 올해 총량규제와 대출 규제가 동시에 강화되며 은행 이자수익 둔화와 실수요자의 체감 대출 경색이 이미 가시화된 상황에서, 내년에도 정책 기조가 유지되면 ‘대출 한파’는 구조적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연착륙이라는 정책 목표와 금융·실물경제의 부담 사이에서, 총량관리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배경이다.
◇“일관되게 갈 수밖에 없다”…성장률 이하 대출 공식화
금융당국은 내년에도 가계부채 총량관리 기조 유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21일 일요진단에 출연해 “가계부채 총량 관리 측면에서 지금의 기조는 불가피하며, 일관되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상성장률 수준에서 관리해 왔지만, 현재는 가계부채의 절대 규모가 워낙 높은 상황”이라며 “연착륙을 위해서는 증가율을 경상성장률보다 더 낮게 설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존 총량관리제 틀 유지와 함께, 은행별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를 한층 보수적인 설정 시그널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이내에서 은행과 협의를 통해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를 설정해 왔다. 그러나 ‘성장률 이하’라는 기준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면서, 관리 강도가 한 단계 더 올라갈 수밖에 없어서다.
◇연간 증가율 ‘2%대’ 거론…은행 수익구조 압박 가중
내년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 목표는 2% 안팎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은행은 금융당국에 국회예산정책처가 제시한 내년 명목 GDP 성장률 전망치(4.0%)의 절반 수준인 2% 내외를 내부 목표로 제시했다. 가계부채 절대 규모 부담을 반영해 관리 기준선을 한 단계 더 낮춘 셈이다.
이 같은 총량 관리 강화는 은행권 수익구조에도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은행권 이자이익은 44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0.7%에 그쳤다. 가계대출 증가세 둔화와 금리 환경 변화가 동시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
은행권에서는 “가계대출을 통한 자산 성장으로 이자수익을 확대하던 기존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량 규제가 장기화될수록, 수익성은 구조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대출 절벽’…실수요자 체감 부담 확대
총량관리의 부작용으로 지적돼 온 ‘대출 절벽’ 현상도 내년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하자 정부는 부동산 안정 대책을 내놨고, 이 과정에서 하반기 은행권의 가계대출 공급 여력이 빠르게 소진됐다. 일부 은행에서는 대출 취급 한도가 조기에 소진되며, 차주들이 주택자금 마련을 위해 여러 금융사를 전전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금융당국 역시 이 같은 소비자 불편을 인식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특정 시기에 대출 수요가 과도하게 쏠리는 문제를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지 살펴보겠다”고 언급하며, 관리 방식의 보완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총량 한도가 정해진 이상, 계절적·정책적 수요 변동을 근본적으로 제어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총량제의 시험대…‘연착륙’ 위한 지속가능성 관건
가계부채는 여전히 한국 경제의 핵심 리스크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GDP 대비 100% 안팎으로, 주요국 중 상위권에 속한다. 금융당국이 총량제 강화를 통해 증가 속도를 억제하려는 배경이다.
문제는 총량제가 단기 처방을 넘어 장기 정책 기조로 굳어질 경우다. 은행의 이자수익 둔화, 실수요자의 체감 대출 경색, 정책 피로도는 누적될 수밖에 없다. 한 은행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 전환과 자본규제 변화까지 겹치면서, 가계대출을 통한 성장 전략은 사실상 막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위해 총량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얼마나 줄일 것인가’만 남은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대출 수요의 시차 관리, 실수요자 보호 장치, 금융권 수익구조 전환을 함께 설계하지 않는다면, 총량제는 ‘관리’가 아닌 ‘덫’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6년은 가계부채 관리 정책의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이 동시에 시험받는 해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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