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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패션 제조와 유통 구조에 내재한 품질 관리의 맹점을 드러내고 있다. 국제 기준과 국내 산업 현장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패딩의 다운(솜털) 충전재는 로트(같은 날짜, 같은 공장, 동일한 생산 조건에서 만들어진 제품 단위)마다 품질 차이가 발생하기 쉬운 소재다. 국제적 시험 기준은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반복 측정을 요구한다. 그러나 국내 제조 관행은 여전히 OEM(주문자위탁생산) 업체에서 제출하는 한 번의 시험성적서에 의존한다. 샘플에서 확인된 값이 대량 생산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생산 과정에선 자동 충전기의 미세한 오차, 다운의 혼입, 공정 편차 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원가 절감을 위해 몰래 저등급 다운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변동 요인을 실물 기반의 원재료 검수로 확인할 절차가 없다면, 오기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현재 다수 브랜드의 품질 관리는 시간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문서 중심으로 진행된다. 유통업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소비자는 유통채널에 대한 신뢰로 제품을 구매하지만, 정작 업체들은 충전재 품질 관련 사전 검증 체계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판매자가 제출한 정보, 신고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오류를 차단하기 어렵다. 일부 브랜드의 문제는 결국 시장 전체의 신뢰 하락으로 확산된다.
문제가 지속될 경우 산업에 미칠 파장은 작지 않다. 소비자는 프리미엄 제품 가격의 근거를 의심하게 되고, 성실하게 기준을 지켜온 기업에도 불똥이 튀게 된다. 더불어 해외에서 충전재 오기재가 ‘기만적 표시’로 규정돼 리콜이나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K패션의 국제적인 경쟁력과 연결된 사안인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제도 변화가 아니라, 기본적인 품질 관리 체계를 작동시키는 일이다. 샘플 검증, 로트별 검사, 출고 전 무작위 검사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채택한 최소한의 절차다. 유통업체도 일정 수준의 사전 검증 과정이나 품질 확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패딩 충전재 논란은 산업 전반에 투명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메시지다. 이제는 품질 관리의 기본을 다시 세우고, 시장의 신뢰를 되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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