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논쟁을 두고 유라시아 고고학을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논쟁하는 것 자체가 국가 망신"이라고 일축했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22일 SBS라디오에 출연해 "우리나라에는 100년 전부터 다양한 위서(僞書)가 있어 왔다"며 "이 위서는 러시아도 있었고 영국, 인도, 중국, 일본도 있다. 이것은 극히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의 어떤 신념을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인데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환단고기를 두고 "1970년대까지 한국이 가지고 있었던 자기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 열등감이 표현돼 있다"며 "그러나 그 문제가 오늘의 핵심이 아니라 왜 그것이 2025년도에 여전히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냐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위서가 나오는 특징은 자기 역사에 대한 열등감이 있지만 정말 자기 나라가 잘 살았으면 하는 욕망이 생길 때 나온다"면서 "일부 소수 사람들이 (환단고기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분야에서 올라가신 분들이 이 책을 믿는 걸 보고 많이 놀랐다"고 밝혔다.
그는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이 환단고기를 믿는 이유를 두고는 "커다란 틀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연습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언제나 선을 그어서 우리 것만, 딱 한국사 아니면 X다(라고 배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베리아나 거대한 유라시아 등을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의 역사는) 유라시아 초원과의 교류가 많다"며 "이때문에 신라 칼도 몇천 킬로미터 밖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에 대한 논리의 전환이 뭐냐면 '한국과 비슷해? 그럼 한국 땅' 이렇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사 아니면 다 쓸모가 없다는 식으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보편적인 역사에 한국을 넣어야 되는데 보편적 세계사는 우리가 잘 안 배우고 오로지 '한국만 중요해, 한국은 커야 돼'라고 하는 것이 은연중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러한 위서 논란이 왔을 때 한 번에 훅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환단고기에서의 핵심 내용에서 단군왕검이 만든 고조선 이전에 환국이라는 국가가 있었는데, 이 나라가 유럽부터 시베리아까지 뻗어 있었다는 주장을 두고 "말이 안 된다"면서 "이렇게 시베리아와 같은 거대한 땅을 (가진 나라가) 고대에 있었다고 믿는 것은 100년 전에 유행했었던 전 세계 공통된 역사 인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좋은 예가 대서양에 거대한 대륙을 가진 문명국이 있었는데 침몰했다는 아틀란티스 대륙"이라며 "(100년 전인) 그 당시에는 고고학이 없었기에 모든 사람이 과거로 올라갈수록 더 거대하고 멋있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똑같은 식의 (큰 영토를 차지하는) 지도를 터키도, 일본도, 러시아도 경쟁하듯이 그렸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환단고기도 사실은 그런 것의 일종이기에 고대 역사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반에 민족들이 독립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자기네 나라가 돋보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만든 것)"이라며 "한국도 그 당시에 세계의 어떤 위서들의 영향과 똑같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례로 "독일도 나치가 아리안족의 발흥이라고 이야기한다"며 "아리안이라는 원래 뜻은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이라서 이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나 페르시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백인으로 치환시켜서 거대한 유라시아가 원래부터 나치 땅이니까 지금 전쟁하는 것은 자기 땅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니까 현대의 자신, 당대의 욕망을 투영시키기 위해서 거대한 그림을 그렸던 것은 철저하게 강력한 제국을 희망했었던 당대의 어떠한 열망이었던 것"이라며 환단고기도 그러한 목적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단고기 논쟁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을 두고 "나라가 창피한 것"이라며 "한국 문화가 전 세계 최고로 올라갔는데 쓸데없는 것이 논쟁화 되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환단고기 이야기가 나온 게 동북아역사재단이라는 곳인데 그곳은 원래 중국의 역사 공정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을 대응하기 위해 나온 곳"이라며 "최근 중국의 발해나 만주에 대한 역사 공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동북공정에 비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거기에 대응하기도 지금 힘과 실력과 시간이 부족한데 이 황당한 논쟁에 우리가 빠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며 "반박해서 싸워야 하는데 우리는 황당한 걸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만 년 전에는 다 우리 땅이었다고 하는 자체가 얼마나 심각한 시간과 논쟁의 소모인가"라고 꼬집었다.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