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에서 벗어나 복원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역의 퓨마가 새로운 먹잇감으로 펭귄을 사냥하기 시작하면서, 지역 생태계 전반의 먹이사슬 구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형 포식자 복원이 단순한 과거의 회복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생태적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이 쏠린다.
야생동물 퓨마.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한 자료사진.
지난 16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 버클리) 미첼 세로타 박사 연구진은 파타고니아 몬테레온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퓨마의 행동 변화를 분석한 논문을 영국왕립학회회보 B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퓨마가 마젤란펭귄을 주요 먹이로 삼기 시작한 이후, 이동 범위와 개체 간 관계가 뚜렷하게 달라졌다고 밝혔다.
연구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됐다. 연구진은 몬테레온 국립공원 일대에 서식하는 퓨마 14마리에 GPS 추적 장치를 부착해 이동 경로, 활동 범위, 개체 간 접촉 빈도 등을 장기간 관찰했다. 그 결과 펭귄 번식지 인근에 영역을 둔 퓨마들은 그렇지 않은 개체들에 비해 이동 범위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퓨마는 넓은 영역을 홀로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단독 생활을 하는 포식자다. 그러나 펭귄 서식지 주변의 퓨마들은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 안에서 생활하며, 다른 퓨마와 마주치는 빈도도 증가했다. 연구진은 풍부하고 예측 가능한 먹이 자원이 퓨마의 전통적인 사냥 전략을 바꿨다고 해석했다.
펭귄 사냥하는 퓨마.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한 자료사진.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퓨마와 펭귄이 겪어온 역사적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파타고니아 내륙에 서식하는 퓨마는 20세기 초 가축 피해 등을 이유로 대대적인 박해를 받으며 멸종 위기에 몰렸다. 이후 보호 정책이 시행되면서 개체 수는 점차 회복됐다.
퓨마가 사라졌던 시기에 원래 해안과 도서 지역에 주로 서식하던 마젤란펭귄은 포식자 위협이 줄어든 내륙 지역으로 서식지를 확장했다. 그 결과 퓨마가 복원된 뒤에는, 이미 내륙에 자리 잡은 펭귄 집단이 새로운 먹잇감으로 떠오르게 됐다.
기존에 이 지역 퓨마의 주요 먹이는 과나코였다. 과나코는 남미에 서식하는 낙타과 초식동물로, 파타고니아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펭귄이라는 새로운 고열량 먹이원이 등장하면서 퓨마의 사냥 선택지가 바뀌었고, 이는 과나코와 퓨마로 이어지던 기존 먹이사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진은 퓨마 이동 범위 축소와 개체 밀도 변화가 장기적으로는 과나코 개체 수, 초지 식생, 다른 중소형 포식자들의 분포까지 연쇄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형 포식자의 행동 변화 하나가 지역 생태계 전체에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연구에 대해 제이크 고힌 아이오와주립대 교수는 “포식자 복원은 단순히 과거의 생태계를 그대로 되살리는 과정이 아니다”라며 “새로운 환경 조건 속에서 예상치 못한 생태적 상호작용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낙타과 라마속에 속하는 포유류인 과나코.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한 자료사진.
펭귄 개체 수에 미칠 영향에 대해 연구진은 현재로서는 펭귄 개체 수 감소가 관측됐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만 퓨마의 사냥이 특정 지역에 집중될 경우, 펭귄 번식 성공률과 서식 패턴에는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인간과의 갈등 가능성이다. 퓨마의 활동 범위가 줄어들고 특정 지역에 밀집될 경우, 관광객이나 인근 지역 주민과의 접촉 가능성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보호 정책 역시 단순한 개체 수 유지가 아니라, 변화하는 행동 양상을 고려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연구는 멸종 위기 종 복원이 항상 과거의 균형을 되찾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라졌던 포식자가 돌아온 자리에는 이미 새로운 질서가 형성돼 있었고, 그 만남은 또 다른 생태계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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