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훈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석화 산업이 처한 현실을 이같이 진단했다. 단순히 NCC 규모를 줄이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스페셜티를 개발하기 위한 생태계를 만드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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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석유화학 산업은 반도체, 배터리하고 많이 다르다.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 데 최신 기술이 필요한 분야와는 달리 석화는 50년 된 장비를 들여와서 지금까지 돈을 벌어온 것”이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2·3차 밴더 역량을 키우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인력 양성조차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와서 R&D에 투자하고 지원하려고 해도 그럴 만한 조직 자체가 없다. 사실상 석화는 그동안 R&D를 할 필요가 없었던 분야”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업재편이 미래 세대를 위한 경쟁력 강화의 분기점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스페셜티와 친환경 제품을 만들어낼 인력부터 양성해야 한다”며 “최소 10년에서 20년을 내다보는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철강산업을 예로 들며 “과거 일본제철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고급화 전략을 취한 덕분에 현재는 세계 3위까지 올라섰다”며 “범용 제품 중심이 아니라 우리만 할 수 있는 기술력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기료 정상화·화평법 개선 논의 필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이번 감축만으로 석화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이미 깊게 형성돼 있다. 높은 전기료, 과도한 탄소 감축 로드맵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조조정을 하면 생산량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구조조정을 하든지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합치거나 생산량을 조절해봤자 임시방편에 머무를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전기료 감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일단 단기적으로 전기요금을 좀 정상화해야 한다. 지금 같이 산업용에 집중적으로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으로는 석화를 비롯해 주력 산업이 다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기요금 정상화가 병행되지 않는 한 구조조정은 미봉책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도 전기료 인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 교수는 “전기료 정상화 없이는 구조조정도 무의미하다”며 “구조조정하는 데 2~3년은 족히 걸리겠지만, 전기료를 꼭 정상화해야지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화학물질 규제법인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개선도 촉구했다. 이 교수는 “화학물질의 취급 및 관리 규제가 심해 기업들이 스페셜티를 개발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NCC 감축 목표는 달성 예상…눈치 싸움 본격화
정부가 연말까지 사업재편안을 제출하라고 기한을 못 박은 데 따라 국내 NCC 기업들은 지난 19일 일제히 정부에 사업재편안을 제출했다. 기업들이 제출한 재편안에 따르면 당초 정부가 목표로 세운 270만~370만t의 NCC 감축 달성이 예상된다.
여수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한 뒤 노후화된 LG화학 여수 1공장(연 120만t)을 폐쇄하는 방향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여천NCC는 이미 가동 중단한 3공장(47만t) 폐쇄에 더해 1·2공장과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 중 하나를 추가로 축소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울산은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 에쓰오일 등 3사가 구체적인 합의안을 만들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우선은 SK지오센트릭이 보유한 66만t의 설비를 축소하면서 스페셜티 제품 개발을 위한 R&D에 집중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에쓰오일의 최신식 설비 샤힌 프로젝트가 내년 가동을 앞둔 게 걸림돌로 꼽힌다.
대산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지난 11월 일찌감치 110만t 설비 감축에 합의해 속도가 빠른 편이다. 정부는 현재 대산 사업재편을 위한 정부지원 패키지 검토 마무리 중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기업들이 제출한 재편안은 초안 성격”이라며 “재편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 기업 간 눈치싸움이 또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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