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관장 인선을 2년째 미루면서 벌어진 촌극이다. 이들 기관엔 법정 임기가 남은 임원이 사실상 없는 상태로, 경영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광공사는 그나마 이달 신임 사장 공모 절차를 시작했으나 강원랜드는 감감무소식이다.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강원랜드는 상장 공기업이기 때문에 경영 공백이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전체 임원진을 다 채우려면 1년 가까이 걸릴 것이고 이는 국가자산 활용의 비효율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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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넷 중 하나는 사실상 공백
22일 이데일리 집계에 따르면 현재 344개 공공기관 중 47곳이 기관장 없이 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다. 강원랜드·관광공사처럼 1년 이상 공석인 채로 방치된 곳도 11곳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 43곳은 이미 기관장 임기가 끝났거나 수일 내 끝난다. 전체의 27%에 이르는 90곳이 사실상 공백인 셈이다.
공공기관 기관장 공백은 업무상 차질을 넘어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가 2030년까지 300조원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K컬처’의 경우 이를 담당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33개 공공기관 중 9곳의 기관장이 공석이다. 정부가 정책을 세워도 수행기관과 손발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주요 에너지 기관의 리더 부재도 국가 경쟁력 약화와 연결될 수 있다. 새 정부가 공격적인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키로 하면서 전력계통 관리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지만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올 6월 이후 반년째 공석이다. 발전소 정비 공기업 한전KPS(051600) 사장, 정부 에너지 정책 수행기관인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은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아 3년의 법정임기를 훌쩍 넘겨 5년 가까이 직을 맡고 있다.
인사적체의 가장 큰 원인은 지난해 12월 3일의 비상계엄과 이후 이어진 반년 간의 탄핵 사태지만, 새 정부 들어 공공기관장 인사가 유달리 늦어지면서 기관장 공백이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이나 한국석유공사등 전 정부 정책과 연관해 논란이 불거지며 기관장이 사의를 표명한 경우 사표 수리는 빠르게 처리되는 반면 후임 인선은 지지부진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 교수는 “전 정부 시절 인사에 대한 사퇴 압력은 큰 반면 정작 후임자 인선은 늦어지는 중”이라며 “(공공기관을 운영하는) 기획재정부가 내년 분할 개편 예정이라는 점도 있지만, 현재로선 단순한 인사 지연이 아니라 정부의 공공기관 운영기능 자체가 사실상 마비된 상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현 정부 인사 ‘불편한 동거’ 되풀이
자연스레 새 정부와 전임 정부 임명 공공기관장 간 ‘불편한 동거’도 이어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반년이 지났지만 전체 공공기관의 62%에 이르는 212개 기관의 기관장은 윤석열 정부 임명 인사다. 대통령 권한대행 때 이뤄진 인사를 포함하면 전 정부 임명 인사가 무려 272곳(79%)에 이른다.
이는 공공기관 구성원 전반의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앞선 인천국제공항공사 업무보고에서 전임 정부 임명권자인 이학재 사장을 공개 질타한 게 대표적이다. 대통령실은 정치적 해석에 선을 그었으나 연일 이어지는 불협화음 속 2000여 임직원은 물론 전임 정부 임명 기관장, 특히 낙하산 의혹을 받았던 타 기관 소속 임직원들도 언제 불똥이 튈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인사 적체 속 전전임 정부인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기관장이 18명으로, 현 정부 임명 인사권자보다 더 많은 이례적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공공기관장 임기가 3년이란 걸 고려하면 이미 인선이 이뤄졌거나 최소한 1년씩의 임기 연장이 이뤄졌어야 하지만, 대부분 아무런 조치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기관장이 법정임기 종료 시점에 맞춰 구직 활동을 하다가 계엄·탄핵 사태가 터지면서 부랴부랴 복귀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임기를 다 한 기관장에 대해 아무런 조치 없이 시간을 끄는 건 공공기관 임기제도의 취지를 흐리는 것은 물론 국정 공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문제”라며 “결국 실질적인 인사권이 있는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서 빠르게 인사를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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