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경제 뉴스 네트워크는 12월 20일, 웨이스 사전과 이코노미스트 주간지가 ‘slop’을 2025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고 보도했다. ‘인공지능(AI) 쓰레기’를 뜻하는 이 단어는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저질 디지털 콘텐츠의 범람에 대한 대중의 피로와 경계심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원래 진흙이나 찌꺼기를 의미하던 ‘slop’은 이제 시대의 은유가 됐다. 온라인 공간은 실질적 의미가 희박한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으로 가득 차 있고, 양은 질을 압도한다. 인간의 창의성은 자동화된 대량 생산에 밀려난 듯 보이며, 콘텐츠의 가치 기준은 흐려지고 있다.
웹스터 사전은 공지문에서 ‘슬롭’을 “대개 AI가 대량 생산하는 저품질 디지털 콘텐츠”로 정의했다. 웨이스 출판사의 사장 그레그 발로는 이 선택이 사용자가 온라인상의 허위·평범한 콘텐츠 범람을 점점 더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slop’의 검색량 증가는 소셜 미디어, 검색 엔진, 웹사이트 전반에 퍼진 ‘정크 콘텐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유력 언론의 진단도 같다. 이코노미스트는 ‘slop’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며, 생성형 AI의 급부상이 무의미한 콘텐츠의 폭증을 촉발했다고 분석했다. 몇 초 만에 영상을 만들어내는 도구들이 확산되면서, 피상적이거나 허위에 가까운 결과물이 소셜 미디어와 검색 결과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슬롭 상인’—의미보다 노출을 우선하는 제작·배포자—들이 AI를 활용해 텍스트와 영상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AI가 다시 AI의 산출물을 학습 데이터로 삼는 ‘자기증식’ 현상도 나타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기계 학습이 자신의 생성물을 먹이로 삼는, 마치 꼬리를 삼키는 뱀과 같은 상황”에 비유했다. 품질 관리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런 순환이 강화될수록, 정보 생태계의 신뢰도는 더 빠르게 훼손될 수 있다.
‘slop’의 연례 단어 선정은 AI가 언어와 사회 인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기록하려는 더 넓은 흐름의 일부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가 2025년 올해의 단어로 ‘레이지 베이트(rage bait)’를 고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분노를 자극해 참여를 끌어올리는 설계된 콘텐츠가 확산되는 현실은, 알고리즘과 수익 논리가 결합한 디지털 환경의 그늘을 보여준다.
결국 ‘slop’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경고다. 생성형 AI의 생산성을 어떻게 관리하고, 플랫폼과 이용자가 어떤 기준으로 가치를 선별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정보의 바다는 더 탁해질 수밖에 없다. 단어 하나가 시대의 피로를 증언하는 지금, 해법을 찾는 논의 역시 같은 속도로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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