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경제지 레제코는 12월 19일을 기점으로 일본 통화정책의 시간축이 30년 전으로 되돌아왔다고 전했다. 자크 시라크가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고, 《토이 스토리》가 개봉하며 소니의 1세대 플레이스테이션이 가정에 보급되던 해가 마지막으로 일본의 기준금리가 0.75%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 이후 장기간 제로금리의 터널을 지나왔고, 지난 12월 19일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다시 0.75%로 복귀시켰다.
일본은행은 이번 인상이 ‘급변’이 아닌 ‘관리된 정상화’임을 분명히 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금리는 여전히 명확한 마이너스이며, 금융 여건도 충분히 완화적이어서 국내 경제 활동을 지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수십 년간 거의 제로 비용으로 차입해 연명해온 수천 개의 수익성 취약 기업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금리는 낮게 유지돼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해외 유출을 늦출 만큼의 수익률 신호는 필요하다는 ‘균형점’을 제시했다.
시장 반응은 냉정했다. 투자자들이 인상을 대체로 예상한 탓에 발표 직후 변동성은 제한적이었고, 아시아 거래 시간대에 엔화는 오히려 달러와 유로 대비 추가 약세를 보였다. 유로당 엔화 환율은 이번 주 183엔까지 떨어졌다. 2012년 1유로가 95엔에 불과했던 것과 대비된다. **골드만삭스**의 오타니 아키라는 “엔화 약세 억제는 인상 목표 중 하나”라며 “외환시장 동향은 앞으로도 통화정책의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 약세의 명암은 분명하다. 외국인 관광객과 수출업체에는 호재지만, 식품·에너지·생활필수품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 가계에는 부담이다. 인플레이션이 수개월째 3%를 웃돌며 실질소득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도 불만을 키운다. 그럼에도 주식시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도쿄 증시의 벤치마크인 **닛케이 225**는 발표 전후로 1% 이상 오르며 기존 추세를 이어갔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스테판 앙릭은 “엔화는 현재 금리 차와 경제 펀더멘털에서 상당 부분 분리돼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진짜 변수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향방이다. 일본의 초저금리를 이용해 엔화를 빌린 뒤 고금리 통화로 환전해 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이 거래는 오랜 기간 글로벌 자금의 동력이었다. 리옹증권 도쿄 담당 애널리스트 니콜라스 스미스는 이를 “우주의 암흑물질”에 비유하며, 규모를 2,500억~5,000억 달러로 추정했다. 일본 금리와 국채 수익률이 점진적으로 오르고 엔화가 반등할 경우, 일부 대형 투자자는 서방 자산을 매도해 엔화 대출을 상환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일본 본토 투자자들의 역류 가능성도 겹친다. 미·유럽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좁혀지면, 약 4조 달러에 달하는 해외 채권·주식 보유분 중 일부가 본토로 돌아올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주식·국채 수요를 낮춰 가격 조정을 유발할 수 있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전개가 느리고 예측 가능해 ‘급박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결국 30년 만의 0.75%는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일본은행은 충격을 최소화하는 속도로 정상화를 탐색하고, 시장은 캐리 트레이드의 서서히 풀리는 매듭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엔화의 방향과 글로벌 자금 흐름은 그 과정에서 한 박자씩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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