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기자들은 자조 섞인 말로 자신들을 ‘춘추관 기자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춘추관을 들어간다고 해서 청와대를 온전히 출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구중궁궐로 불렸던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벗어나 청와대로 첫 출근한 22일은 1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이었다. 오전 7시 광화문역으로 나왔지만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다. 영하의 바람이 불었고 그곳까지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삼청동으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는 신호 대기 시간까지 합쳐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목적하던 정류장에 도착했다. 내려서 3~4분 정도 걷자 춘추문이 보였다. 지난여름 청와대 개방 때까지는 열려 있던 문이었다. 그 문에서 머리 하나가 나와 바깥을 살펴봤다. 한 무리의 기자들이 왔다는 것을 보고 간단한 출입증 확인 절차를 거친 뒤 안으로 안내했다.
도심 속 사찰의 모습을 닮은 춘추관은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1990년에 지어졌다. 낡아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기자실 안은 다시 책상 등 사무 집기로 채워졌다. 석간 기자 등 일찍 도착한 기자들은 개인 짐을 풀어놓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출근 전 기자들의 박스 짐이 쌓여 있었다.
이윽고 부대변인의 일정 브리핑이 시작됐다. 춘추관에서의 첫 브리핑이다. 새롭게 꾸민 브리핑장은 천장이 높았지만 아늑하게 느껴졌다. 기자와 춘추관 관계자들 모두 표정이 밝았다. ‘무덤 같다던’ 6월 용산 대통령실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지난 반년간 친근감의 온기가 체감됐다.
브리핑이 끝나고 기자들은 각자 자리로 갔다. 아침 보고를 위해서다. 아침 보고와 무관한 일부 기자들은 춘추관 내부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중에는 흰머리에 주름살이 깊게 패인 노기자 무리가 있었다. 청와대 터줏대감으로 오랜 시간, 혹은 오래전에 출입했던 이들이었다. 지하 샤워실을 가리키며 ‘경호처 직원들이 일부러 올 정도로 좋았다’고 말했다.
그즈음 최근 친해진 기자 A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안국역에서 내려 걸어오고 있다는 그의 사진과 메시지에는 노곤함이 배어 있었다. 아침나절 30분간 걸어왔다고 했다.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알맞을 듯했다.
그가 걸어온 삼청동 길가는 고요했다. 주변은 관광도시 같았다. 얼마 전까지 많은 인파가 다녀갔다는 점이 쉽게 짐작됐다. 그 거리를 아침에는 러너들이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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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관에서는 밥을 먹으러 가는 것도 ‘큰’ 일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삼각지역과 신용산역 사이 상권을 품고 있었다. 용리단길로 불리는 곳이다. 길어봐야 10분 정도 걸어가면 됐지만, 춘추관은 10분이 기본이다. 이날 약속이 있던 곳도 경복궁 서편의 한식당이었다. 걷는 거리만 25분으로, 광화문역에서 춘추관까지 걸어오는 시간과 엇비슷했다.
그곳에서 밥을 먹고 다시 춘추관으로 돌아오니 걸음 수는 1만2000걸음이 찍혀 있었다. 평소 하루치를 반나절 만에 달성했다. 점심을 분명 먹었지만 왠지 모를 허기를 느껴 기자실 내 간식에 손을 댔다.
오후 시간에는 인터넷이 문제를 일으켰다. 속도가 무척 느렸던 것이다. 기자실 한켠에서 “이거 용산 때 생각나네”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 6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인터넷이 자주 끊겼던 일을 떠올린 말이다. 다크서클이 눈 밑 1인치는 족히 내려왔을 법한 춘추관 직원은 울상이 된 채 이곳저곳을 다녔다.
결국 KT 직원이 왔고 속도는 정상화됐다. 어찌 된 영문인지 묻자 출처를 알 수 없는 이가 대답했다. “껐다 키니까 되네요.”
간식 하나를 먹고 자리에 앉았을 때 기자 A의 메시지를 또 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그는 잠시 자신의 회사에 다녀왔다. 그의 메시지에는 “오며 가며 진을 뺀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길어진 동선에 노곤함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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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마친 기자들이 퇴근길에 올랐다.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이었던 터라 퇴근길 주변은 어두웠다. 해는 이미 졌다. 걸어가리라 마음먹고 경복궁 돌담길 초입을 지나려던 차에 호다닥 뛰어가는 A 기자가 보였다. 오가며 지쳤을 그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었다. 버스 기사는 잠시 멈춰 그를 태워줬다. 안심이 됐다.
20여 분 걸려 광화문으로 걸어 나왔다. 광화문 앞에서는 화려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흥겨운 음악에 관광객들은 추위를 잊은 듯했다. 남대문 방향으로는 화려한 디지털 사이니지가 보였다. 흡사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보는 것 같았다. 세종문화회관 앞은 어느새 크리스마스 조형물로 가득 찼다. 그 앞을 젊은 연인들이 걸었다. 핑크빛으로 물든 그들의 얼굴은 활기차 보였다.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연말이 연말답고 12월이 12월 같은 도심의 한 풍경이었다. 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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