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수리산, 수리바위, 수리봉’처럼 ‘수리—’라는 이름을 가진 땅들이 곳곳에 퍼져있다. 그리고 이런 곳에는 으레 “모양이 독수리를 닮았다”거나 “수리가 새끼를 낳은 곳”이라는 식의 해석이 달리곤 한다. 하지만 이는 객관성이 전혀 없으며, ‘수리’의 뜻을 몰라 생긴 잘못일 뿐이다.
원래 고구려말인 우리말 ‘수리’는 산(山)이나 ‘높은 곳’을 뜻하며 지금도 머리의 맨 위를 뜻하는 ‘정수리’ 등의 단어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세월이 흐르면서, 또 지역에 따라 원형(原形)인 ‘수리’ 외에도 ‘사리, 서리, 소리, 살, 설, 솔, 술, 수락, 시루, 수레, 쓰리...’ 등의 다양한 변형을 갖게 됐다.
이 변형 중에 ‘싸리’도 있는데 인천 중구 경동의 ‘싸리재’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축현(杻峴)’이라는 한자 이름도 갖고 있다. ‘싸리나무(杻) 고개(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곳에 실제로 싸리나무가 많았음을 입증할 사진이나 문서 등의 증거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만큼 싸리재의 ‘싸리’는 ‘수리’의 변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곳 싸리재는 느슨한 언덕 지대여서 높은 고개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주변 지역보다 조금 더 높으면 ‘수리’라 부르기도 했기에 이런 이름이 생긴 것이다.
이곳 싸리재, 곧 축현 때문에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인천~노량진 32.8㎞의 경인철도가 개통될 때 이곳에 축현역이 생겼다. 지금 동인천역의 전신(前身)이다.
이 축현역은 1926년 ‘상인천역(上仁川驛)’으로 이름이 바뀐다. 그 이유가 재미있는데 당시 자료를 보면 “축현역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인천에 있는 역인지 잘 몰라 제때 내리지 못하고, 축현역에서 내려야 하는 여객이 (다음 역인) 인천역까지 가서 내리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다.
이 상인천역은 광복 뒤인 1947년 8월 일제강점기 이전의 이름을 되찾는다는 뜻에서 다시 축현역으로 바뀌었다가 1955년 7월 동인천역이 됐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한자음(漢字音)과 국문으로써 구별하기 곤란해 축현역을 부르기 쉬운 동인천역으로 바꿨다”라고 실려 있다. 이는 ‘杻峴’이라는 한자가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어디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알기 쉬운 이름으로 바꿨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천시가 요즘 이 동인천역의 이름을 바꾸는 문제를 연구 중이다. 고유한 특색이 없이, 동서남북의 방위만 따져 지은 이름들을 새롭게 바꿔보려는 ‘방위식 명칭 변경 용역사업’에 따른 것이다. 동인천역은 방위식 지명일 뿐만 아니라 인천의 동쪽이 아닌 서쪽에 있어 실상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구 대상에 포함됐다.
그런데 동인천역이라는 이름의 대안으로 축현역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최종 결정은 이번 연구용역 결과에 대한 주민공청회와 시 지명위원회를 거친 뒤 국가철도공단이 한다.
옛 이름을 되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갈수록 한자를 모르는 세대들이 “한자음과 국문으로써 구분하기 곤란한” 축현역을 어찌 생각할지, 정겨운 우리말로 그냥 ‘싸리재역’이라 하면 어떨지..., 여러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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