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1위 손해보험사 삼성화재와의 인연을 계기로 중국 생활가전 1위 기업인 메이디그룹이 국내 여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최근 메이디그룹은 회사의 근간인 가전사업을 넘어 금융, 로봇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향후 국내 기업과의 접점 또한 늘어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업 확장의 배경에는 메이디그룹의 창업주인 허샹젠(何享健)과 후계 경영인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영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금융·로봇까지 품은 중국판 삼성전자 메이디그룹…지배구조 최상단엔 창업주 '허샹젠 일가'
중국 금융업계에 따르면 메이디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메이디홀딩스의 자회사 준란호텔관리유한공사는 지난 9월 삼성화재 중국법인(삼성재산보험)의 지분 11.5%를 인수하며 3대 주주에 올랐다. 현재 삼성재산보험의 최대 주주는 지분 37%를 보유한 삼성화재이며 2대 주주는 2022년 투자자로 참여한 중국 최대 IT 기업 텐센트홀딩스(32%)다. 삼성화재는 지난 2005년 중국법인을 세운 뒤 2022년 텐센트 등 5개 현지 기업을 주주로 유치하며 합작법인 형태로 회사를 변경했다. 메이디그룹은 이번 지분 인수로 중국 의류 대기업 HLA그룹의 자회사인 맘바트 장자강 투자 개발과 함께 각각 11.5%의 지분을 보유한 공동 3대 주주에 올랐다.
메이디그룹의 금융업 투자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4년 중국 순더농촌상업은행 지분 9.69%를 인수하는 등 일찌감치 금융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를 해왔다. 중국 재계에서는 이번 인수로 메이디그룹의 내부 자금 운용 효율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루고 있다. 최근 삼성재산보험이 뚜렷한 실적 개선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배당이라는 안정적인 수익원 확보와 그룹 차원의 재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재산보험의 올 상반기 영업수익은 182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삼성재산보험 지분을 인수한 준란호텔관리유한공사는 메이디홀딩스의 호텔 부문 자회사다. 메이디홀딩스는 창업주 허샹젠(何享健)과 그의 가족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자리하고 있다. 다만 가족 구성원별 구체적인 지분율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메이디홀딩스의 주요 자회사로는 ▲메이디(가전 제조·판매사) ▲준란호텔관리유한공사(호텔 운영·관리 법인) ▲트랜스로직(물류 자동화 솔루션 자회사) ▲메이디 리얼에셋(부동산 개발) ▲쿠카(로봇 제조사) 등이 있다.
허샹젠 창업주는 메이디홀딩스 외에도 그룹 주력 계열사인 메이디의 지분(31.3%)도 직접 소유하고 있다. 그룹의 본체인 메이디는 지난해 매출 4091억원위안(원화 약 86조원), 순이익 388억위안(원화 약 8조1400억원) 등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올해 상반기 역시 매출액 2523억위안(원화 약 53조원), 순이익 260억위안(원화 약 5조4500억원) 등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6%, 25% 개선된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에는 2013년 중국 본토 증시인 선전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11년 만에 홍콩 증시에서도 기업공개(IPO)를 시도했다. 당시 조달 금액은 무려 46억달러(원화 약 6조1000억원)에 달했다. 메이디 주가는 지난 4일 연고점 83.17위안을 기록하는 등 올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메이디그룹은 최근 사업 다각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로봇' 부문이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로봇 산업을 국가사업으로 지정하고 지난 2021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총 18조원의 로봇 분야 예산을 집행하는 등 강력한 투자 부양책을 펼치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산업용 로봇 29만5000대를 설치해 글로벌 로봇 시장 생산량의 54%를 차지하며 세계 최대 로봇 생산국으로 부상한 상태다. 메이디그룹은 2022년 독일 산업용 로봇 기업 쿠카 지분 100%를 인수하며 로봇 시장에 진출했다. 쿠카는 세계 4대 산업용 로봇 회사로 손꼽히는 기업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전사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히는 등 지속적으로 로봇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로봇 사업 진출 뿐 아니라 로봇 활용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메이디는 중국 후베이성 징저우에 있는 세탁기 공장에 자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인 '메이뤄'(美羅)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 단계를 넘어 양산 라인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본격적으로 투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시에 징저우 공장에는 메이뤄와 함께 순찰로봇, 자율주행 로봇, 협동 로봇 등도 동시에 배치했다. 현재 중국 현지에선 "최근 메이디가 과감한 로봇 투자로 유니트리, 유비테크 등 중국 굴지의 기업과 함께 로봇 산업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수 칠 때 떠난 '중국판 정주영' 허샹젠…때 이른 가업승계 대신 엄격한 경영수업
메이디그룹의 창업주인 허샹젠(何享健)은 중국 제조업의 상징이자 역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에 불과한 탓에 중국을 대표하는 자수성가형 재벌로도 익히 유명하다. 한국에선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배경·성장과정 등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중국판 정주영'이라는 평가도 일부 있다. 1942년 광둥성 순더구에서 태어난 허샹젠은 먹고사는 것조차 어려운 유년기를 거쳤고 초등학교 졸업 후엔 곧장 생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1968년 광동성 베이자오 마을에서 20명 내외의 주민들과 함께 폐비닐, 플라스틱을 모아 병뚜껑을 제조해 판매하는 기업을 설립했다. 그것이 메디이그룹의 시작이었다.
이후 허샹젠 창업주는 각종 기계 및 자동차 부품 생산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1980년 선풍기 제조 사업으로 큰 히트를 치며 중국 전역에 메이디의 이름을 알렸다. 메이디의 선풍기 사업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중국 정부의 '이구환신'(낡은 제품을 새것으로 교체 지원) 정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 정부는 내수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자국 기업에서 구매한 가전제품 15%를 보조금으로 지급했는데 덕분에 선풍기와 에어컨 등 기본 가전제품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후 메이디는 내수 시장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연구개발(R&D)과 전략적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꾸준히 사세를 키운 끝에 중국을 대표하는 재벌기업 반열에 오르게 된다.
중국 재계에 따르면 메이디그룹의 성공 비결 중엔 정부 정책 수혜 외에도 허샹젠 창업주의 개방적인 사고방식도 포함돼 있다. 그는 일반적으로 자녀들에게 기업을 대물림해주던 다른 창업주들과 달리 메이디그룹에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했다. 2009년 67세의 나이로 회장직에서 물러날 때 자신보다 25살이나 어린 사원 출신 경영인 팡풍보(方洪波)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줬다. 자식이라 해도 자리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기 전까진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평소 생각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실제로 현재 그의 자녀들은 메이디그룹 내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장남 허졘펑(何剑锋)은 메이디의 이사회 임원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메이디그룹의 부동산 계열사인 메이디 리얼에셋의 핵심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메이디 리얼에셋의 최대주주는 81.13%의 지분을 보유한 허졘펑의 배우자 루더옌(卢德燕)이다. 장녀인 허쳰장(何倩嫦)은 석유화학 기업인 후이통 신소재 유한회사 지분 30.61%를 직접 보유한 동시에 이사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후이통 신소재 유한회사는 메이디의 신소재 개발 부문에서 독립해 설립된 기업으로 정관상 메이디그룹의 계열사는 아니지만 허쳰장이 최대주주인 만큼 사실상 그룹사로 봐도 무방하다. 회장인 리젠이(李健益) 역시 메이디 운영 관리부서 책임자 출신이다.
허쳰장은 차녀인 허쳰싱(何倩兴)과 함께 과학 연구개발 전문 투자 회사인 포산순더잉하이투자유한공사의 지분 4.55%도 각각 보유하고 있다. 포산순더잉하이투자유한공사는 메이디그룹의 투자 계열사 중 하나다. 허쳰싱(何倩兴)은 현재 허샹젠 자선재단의 이사로 재직하는 동시에 그녀의 남편 장젠허(张建和)와 함께 홍콩에서 그룹 신소재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리튬 배터리 등 가전제품 분야에서 쓰이는 고기능성 소재를 개발하는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메이디그룹의 최근 행보에선 단순한 글로벌 진출을 넘어 금융과 로봇 등 미래 산업으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모습이 돋보인다"며 "특히 창업주가 중국 재벌가의 전통적인 가업 승계 방식과 달리 전문경영인 제도를 직접 도입했다는 점은 능력 있는 인재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가 확실하게 정립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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