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산업도시 포항은 철강과 화학, 에너지 관련 산업이 밀집한 대한민국 대표 산업 거점이다. 그러나 산업 발전의 이면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특히 시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유해화학물질 보관·관리 문제는 단 한 번의 방심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초래할 수 있다.
공존하는 현실
지난해 10월에는 영일만산업단지(영일만산단)에서 특정대기유해물질 배출업체는 물론, 중금속 폐수 배출업소도 수두룩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포항시민들의 우려는 높아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영향평가서 등에 따르면 영일만산단의 유해화학물질 배출량은 200여톤으로 발암, 비발암물질의 연간 발생량은 989톤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시의 유해화학물질 보관시설 관리 실태를 들여다보면, 과연 ‘안전 도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허술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항에는 국가산업단지와 일반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다수의 화학물질 취급·보관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염산, 황산, 질산 등 강산류부터 유기용제, 유독가스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들 물질은 철저한 관리가 전제될 때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자원이 되지만, 관리가 느슨해지는 순간 ‘잠재적 흉기’로 돌변한다.
문제는 이 같은 유해화학물질 보관시설 상당수가 주거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산업단지 인근에는 이미 아파트 단지와 학교, 상가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사고 발생 시 피해가 특정 사업장에 국한되지 않고 대규모 인명 피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큰 구조다.
건축법 시행령 제3조의5에 따르면 유해화학물질 영업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창고가 아닌 위험물 저장 및 처리시설로 용도변경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포항시 신항만 인근 일부 창고들의 건축물대장을 확인한 결과 여전히 일반 창고시설로 등록돼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해화학물질들은 미세한 분말 형태로 돼있어 공기와 접촉할 경우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황산, 마그네슘, 니켈, 아연 등 중금속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시설 노후화와 허가 기준 시설 미비로 인한 안전성 문제마저 우려되고 있다.
형식적 점검 그치는 관리·감독
사고 이후에야 움직이는 행정
정보는 시민에 공개되고 있나
유해화학물질 관리의 핵심은 사전 예방이다. 시설의 노후화 여부, 저장 탱크의 부식 상태, 누출 감지 장치의 정상 작동 여부, 비상 대응 체계 등을 상시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관리·감독이 ‘정기 점검표 채우기’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시설에서는 저장 용기의 노후화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예산 부족이나 생산 일정 등을 이유로 교체가 미뤄지고 있다는 증언도 있다. 또 유해화학물질 취급 종사자에 대한 교육이 연 1회 형식적으로 이뤄지거나, 신규 인력에게 충분한 안전 교육이 제공되지 않는 사례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고는 늘 ‘설마’라는 안일함에서 시작된다.
더 큰 문제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대책이 쏟아지는 행정 관행이다. 타 지역에서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전국 지자체들은 일제 점검을 실시한다. 포항시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점검은 대부분 단기적·일회성에 그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느슨해진다.
시민들은 “사고가 나야만 점검하는 행정이 과연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유해화학물질 사고는 한번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다. 피해는 수십 년간 이어질 수 있고, 지역 전체의 이미지와 신뢰마저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또 하나 짚어야 할 문제는 정보 공개다. 시민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 인근에 어떤 유해화학물질이 얼마나 보관돼있는지, 사고 발생 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관련 정보는 전문 용어로 가득한 행정 자료 속에 묻혀 있거나, 적극적으로 안내되지 않는다.
유해화학물질 관리에서 시민의 알 권리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사고 발생 시 가장 큰 피해자는 시민이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최소한 주민 설명회, 알기 쉬운 안내 자료, 비상 시 행동 요령 교육 등을 정례화해야 한다.
행정 당국이나 사업자가 흔히 내놓는 말은 “현재까지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전 분야에서 이 말만큼 위험한 표현도 없다. 문제는 늘 ‘없어 보이다가’ 한순간에 터진다. 과거 국내외 대형 화학 사고들이 이를 증명한다.
문제없다?
포항시 업계 관계자는 “산업 경쟁력만큼이나 안전 관리에서도 모범 도시가 돼야 한다. 보여주기식 점검에서 벗어나 상시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노후 시설 개선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비용이나 행정 편의보다 앞에 두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유해화학물질은 관리하면 자산이지만, 방치하면 재앙”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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