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제도나 규정, 기준 등은 사회적 필요에서 출발하지만 설계와 운영 방식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의도치 않은 소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것들이 곧바로 갈등을 유발하는 일종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제도가 목적에 맞게 설계됐는지, 내용이 투명하고 납득 가능한지, 그리고 배제 효과를 완화할 장치가 있는지를 점검하는 과정이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남성 위주 기준·규정·정책]
먼저 남성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지적이 반복적으로 제기된 사례들을 짚어보겠습니다.
국제 차량 안전 규정과 시험에서는 오랜 기간 '50분위 성인 남성' 체형의 더미가 핵심 기준으로 사용돼왔습니다. 이런 탓에 실제 사고자료 분석에서 여성이 같은 조건에서 중상 위험이 더 높다는 결과가 반복해서 나오는데요. 서울시 운전면허 소지자 성별 통계에 따르면 남녀 운전면허 소지 비율은 약 6대 4입니다. 여성 운전자들 사이에선 안전의 기준점이 남성 쪽에 고정돼 있다 보니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비슷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2027년부터 신규 소방공무원 채용 체력 시험에서 남·녀 지원자에게 동일한 평가 기준이 적용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성별과 상관없이 똑같은 기준으로 체력 시험을 치른다는 점이 오히려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요.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는 화재 진화 외에도 다양한 소방 업무가 있다는 점에서 다양성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밖에도 교대 남성 할당제, 여군은 발급받지 못하는 나라사랑카드 등 다양한 제도들이 여성 소외 정책으로 함께 언급됩니다.
[시민 인터뷰]
"동일한 선상으로 했을 때 '이게 정말 평등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고 '좀 바뀌어야 되지 않나?'. 요즘은 여자도 운전 많이 하고, 정책이 다양한 세대들을 반영하도록 좀 달라져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뭐 남성이나 여성이나 다 동등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차별을 두지 말고. 이런 제도들로 인해서 여성분들도 불만을 가질 수도 있고, 충분히 (성별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 위주 기준·규정·정책]
물론 반대의 사례도 많습니다. 남성이 상대적으로 배제돼있는 정책들도 한둘이 아닌데요.
서울시는 여성 1인 가구의 범죄 불안과 주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여성안심주택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여성안심주택은 역세권 등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입지에 조성되는데요. 이를 두고 남성 1인 가구 등 다른 계층의 주거 불안과 안전 문제는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범죄의 구조적 원인을 줄이는 것이 아닌 공간 분리로 불안을 관리하는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 해법인지에 대한 논쟁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이 시행하는 여성기업 우대 정책을 두고서도 약간의 잡음이 나옵니다. 정책자금 대출, 보증, 창업 지원 사업에서 여성기업을 우대해 초기 자금 부담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데요. 여성 기업인의 경영 역량 강화를 돕는다는 취지이지만 성별을 기준으로 한 지원이 과연 공정성한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비례대표 여성 할당제, 새일여성인턴십, 여성 전용 시설 등이 남성에 대한 배려가 미흡한 것들로 언급됩니다.
[시민 인터뷰]
"위에서 예전부터 뭔가 차별이 있었기 때문에 시행됐던 정책들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지금 이런 차별들이 만약 위에서부터 없어졌다면 뭔가 성별 혜택을 줘가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은 합니다. (요즘은) 성별 관련 차별은 없어졌다고 생각을 하는데 윗세대로 이제 올라가보면 조금 높으신 분들께서는 약간 남성이 좀 더 많은 것 같긴 한데, 이제는 좀 능력주의 사회가 됐다 보니까 안전 문제 이런 거 말고는 그렇게까지 큰 혜택을 줘가면서까지 성별 차별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주택은 아무래도 위험하니까 필요할 것 같은데 여성 주차장은 '조금 불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성 운전자가 지금은 많이 있고, 여성이라고 해서 주차를 못하는 건 당연히 아니니까요. 요즘엔 가족 전용(배려) 주차장으로 이름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정책들이 현 상황을 따라올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전문가 멘트-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어떤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 단기적으로 중장기적으로 일반적인 국민들 사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해서 좀 더 고민이 필요한 게 공적 분야에서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또 양성평등이 대한 정책 부분에서 어떤 분들에게 어떤 걸 더 줄 때에 결국 나중에 가면 반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그러거든요. 또 공무원분들이 제도를 만들 때 기획과정에서의 세밀한, 부작용이 적게 나타날 수가 있는 이런 식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우 (정책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정부가 주도하는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고 민간의 역할, 참여의 역할, 소통 등이 더 필요한 시대가 온 거죠.
[클로징]
소외감은 상대적인 격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상대적인 격차에서 생겨난 이 소외감들이 모이면 '집단 갈등'이라는 새로운 부작용이 나타나곤 합니다.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면 때로는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정 집단이 아닌 모든 국민의 입장에서 제도를 보완해 나간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도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요? 르데스크 주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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