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해리 기자] 최근 글로벌 전기차(EV) 정책이 급격히 후퇴하는 양상을 띈다. 현대차·기아 등 국내 주요 완성차 업체의 수출 전략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EV 판매 둔화 속 하이브리드(HEV·PHEV) 수요가 폭증하며 내연기관 모델 강화가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내연차 규제 대폭 완화
22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EV 보조금을 지난 10월 폐지한 후 내연기관차에 여전히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IRA의 EV 구매 세액공제(최대 7500달러)가 오는 2032년 예정보다 7년 앞당겨 종료됐다.
북미에서 공격적인 전기차 판매를 준비하던 글로벌 브랜드들은 또다시 위기에 빠졌다. IRA 폐지 당시 미국 EV 판매가 급락하자 포드 CEO 짐 팔리는 “EV 시장 붕괴 위기”를 경고하기도 했다.
국내 제조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 5개 판매 발표에 따르면 현대차, 기아, 한국GM, KGM, 르노코리아의 지난달 글로벌 판매량은 전년 동월(69만5873대) 대비 3.9% 감소한 66만8991대다. 더불어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최근 ‘2025년 자동차산업 평가 및 내년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완성차 수출량을 지난해 대비 2.3% 감소한 약 272만대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 봤다.
유럽연합(EU) 역시 최근 내연기관차 퇴출 계획을 ‘탄소 90% 배출 완화’로 대폭 수정했다.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한 방침을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EU 집행위는 2035년 신차 탄소 배출 감축량을 당초 목표인 100%가 아닌 90%로 낮추도록 완화하는 법 개정안을 지난 16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이에 따라 2035년부턴 전기차 판매만 허용하겠다던 방침이 사라지고, 하이브리드 등 일부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가 가능해진다.
지난 3월엔 독일, 이탈리아 등 주요 자동차 생산국들이 강력하게 반발한 결과, 탄소중립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유로7(EURO 7) 규제 적용을 완화하고 전기차 보조금 축소를 결정하기도 했다.
EU는 자동차의 배기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규제인 유로1을 1992년부터 적용해왔다. 이후 단계별로 강화된 유로2~유로5를 거쳐 2014년부터 유로6를 시행 중이며, 2022년 11월 EU 집행위는 한층 더 강화된 규제안인 유로7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 및 일부 회원국들이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크게 반발했고, 이를 고려해 EU는 최종적으로 유로7 규제를 일부 완화하기로 지난해 최종 합의했다.
또 EU는 최근 탄소배출 규제를 완화하기로도 했다. 당초 계획은 올해부터 신차의 평균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상한선을 2021년 대비 15% 낮추고, 이를 초과하는 경우 g당 95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기차 판매 부진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제조사가 이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업계의 반발이 있어 이를 3년 유예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현대차, 생존모델로 ‘HEV’ 낙점
사정이 이렇다보니 현대차·기아 등 주요 국내 완성차 제조사의 수출 전략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EV 판매 둔화 속 하이브리드(HEV·PHEV)가 대세로 떠오르며, 새로운 생존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차는 하이브리드(HEV)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나아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라인업을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전기차 시장의 캐즘을 극복하고, 고객 수요에 맞춘 유연한 전동화 전략으로, 2030년까지 하이브리드 모델을 14종에서 18종으로 늘린다. 또 전기차 시장 둔화에 대비한 과도기적 대안으로, 소형 엔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EREV를 내년 말부터 추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사이의 간극을 메우겠다는 목표다.
특히 하이브리드 모델을 통해 글로벌 판매 555만대 중 친환경차 비중 60%를 달성하고, 전 영역을 아우르는 전동화 파워트레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기차 수요 둔화와 관세 등 복합 위기에 대응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현대차그룹은 기존 북미 및 유럽 중심의 전기차 전략에서 벗어나 인도, 동남아시아, 중동, 중남미 등 전기차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신흥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관련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와 내연기관차가 공존하는 과도기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차그룹이 변화하는 정책 환경 속에서 얼마나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될 전망”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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