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정지웅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시간을 현행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울시의회는 의원 절반 이상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이번 개정안이 의회를 쉽게 통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교육계 일각에서 나온다. 이에 학생, 학부모, 학원 관계자 등 교육 현장 당사자 10명이 조례 개정안 폐지를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서울 은평구 청소년들이 만드는 독립언론 <토끼풀>과 공동 게재한다.
"나 이 점수로 어떻게 대학 가냐?", "망했다. 인생 포기할까?", "아, 죽을까?" 기말고사가 끝난 뒤, 학교에서는 이런 말들이 쏟아졌다. 중학교에서도 학생들은 이미 대학을 걱정하며 시험 성적에 고통받고 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에서는 어떨까.
최근 급격히 변화한 입시 제도 속에서, 전 과목 1등급을 받지 않고서는 흔히 말하는 SKY, 즉 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진학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또한 매년 11월, 수능이 끝난 뒤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의 소식이 반복된다. 자신의 시간과 체력, 노력을 모두 쏟아부은 최소 12년의 시간이 단 하루, 몇 시간의 시험 결과로 결정된다는 사실은 학생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으로 다가온다.
이번에는 시험 이야기를 잠시 벗어나, 학생들의 수면 시간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질병관리청의 청소년 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서울시 청소년의 평균 수면 시간은 5.9시간이다. 청소년의 권장 수면 시간은 최소 8시간이다. 그러나 현실 속 청소년들은 학원 숙제와 학교 공부에 쫓기며 자정이 돼서야 잠자리에 든다. 그마저도 6시간이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학생들은 카페인 음료에 의존해 밤을 새우기도 한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학교에 가면,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도 있지만 잠에 빠진 학생, 혹은 밤새 끝내지 못한 학원 숙제를 붙잡고 있는 학생도 있다. 이 상황이 반복되면 수업 분위기는 흐트러지고, 교사들이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수업 분위기가 저하되고 집중하는 학생이 거의 없는 교실에서, 과연 교사들이 이전과 같은 열정으로 수업을 준비할 수 있을까.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나는 대체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수업 질이 떨어지면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 이는 결국 공교육 약화와 사교육 강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것이 현 교육 체제의 폐해다.
이처럼 학업으로 인해 학생들의 정신과 신체가 망가지고, 수업마저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서울시의회는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 시간을 기존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연장하는 조례안을 추진하고 있다. 어른들은 이 조례의 목적을 '학습권 보장'과 '타 시·도와의 형평성'이라고 말한다. 부산이나 인천은 밤 11시까지, 대전은 밤 12시까지 학원 운영이 가능하니 서울도 이에 맞춰 학생들이 스스로 교습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회는 이 조례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학생을 위한 조례라고 믿으며 추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시선일 뿐이다. 청소년들은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조례를 다룬 인스타그램 게시글의 댓글을 보면 "자살하라는 말을 이렇게 돌려 말하는 것이냐", "청소년 자살률만 더 올라가겠다", "왜 우리 의견은 묻지도 않고 멋대로 정하느냐" 등 부정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댓글에서 드러나듯, 이 조례는 청소년을 위한 조례가 아니라 오히려 청소년들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정책이다. 청소년을 보호하기는커녕, 해치는 조례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분명 자정까지 학원 교습 시간을 연장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존재한다. 시도와의 형평성이 문제라면, 타 시도의 학원 교습 시간을 앞당기는 방안도 가능하다. 혹은 어른들조차 이 정책이 옳은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조례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에게 직접 묻고 의견을 수렴하는 방법도 있다. 청소년을 위한 조례라면,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먼저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의회는 이런 대안을 외면한 채,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더 망가뜨리는 최악의 선택을 하려 하는가. 도대체 몇 명의 청소년이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삶을 포기해야, 몇 번의 밤을 새우며 고통 속에서 버텨야, 어른들은 이 제도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을까. 어른들의 시선이 아닌, 학생들의 시선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을까. 나를 포함한 수많은 청소년은 이 조례가 절대 옳지 않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중단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부디 돌이킬 수 있을 때, 서울시의회는 학원 교습 시간을 밤 12시로 연장하는 이 조례안을 즉각 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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